2월 하순부터 방글라데시 선교단원 모집이 시작되었지만, 지원자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3년 전 방글라데시 선교 때 너무나 고생하고 배탈 나고 뎅기열로 입원하고 해서 지원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청년부의 여름수련회와도 겹치고 방글라데시가 여행자제국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선교국가를 바꾸는 것까지도 고려되었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섭리하셨습니다. 3년 전 그렇게 고생했으면서도 다시 5명이 지원하였습니다. 그 후 속속 참가자가 늘어났습니다. 급기야 나중에는 비행기사정으로 인해 몇 명을 거절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매주 준비모임을 통해서 단원들의 영적 무장을 꾀했습니다. 두 선교사님과 이메일로 카톡으로 연락하면서 세밀하게 선교계획을 세워 나갔습니다. 첫 번째 사역지 하종족마을은 박진영선교사께서 공을 들이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차로 8시간을 달려 국경수비대를 통과하여 나룻배로 강을 건너는 험한 지역이고, 더욱이 몇 년 전 이슬람반군이 기독교인을 살해한 인근지역이었습니다. 잠자리와 화장실도 문제였습니다. 단장으로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원들이 동요할까 봐 다카 도착 전까지는 자세한 사실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출발하는 날은 시작이 반이라고 마음은 벌써 끝난 것처럼 가벼웠습니다. 두려움과 공포는 사라지고 마음이 담대해졌습니다. 단장이기에 모든 책임을 지고 순교하라면 하리라 마음먹고, 출발하는 날 아침 아들과 딸에게 유서를 쓰고 집을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20명 이내만 출입 가능하던 국경수비대 검문소는 최근 철거되었으며 강물은 줄어들어 걸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태양광으로 전기 문제도 해결되었습니다. 가장 염려했던 지역인데 단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장 은혜스러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사역하는 동안 모든 단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어려운 환경을 감수하고 사역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순간순간 우리 선교단을 공격하였습니다. 힘든 일, 위험한 일이 수없이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단원들이 힘든 사역 중에도 기쁨으로 감당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혜가 충만하게 밀려왔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초등학교를 세우는데 정부의 허가가 필요 없으며 1천만 원 남짓한 돈으로 초등학교를 세워서 기독교 교육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 이곳이 선교의 블루오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험한 이곳으로 우리를 보내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발도 없이 맨발로 걸어 다니는 어린이들, 침실과 부엌과 거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3평 남짓한 흙집에서 온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한국의 50년 전 모습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주여 서양의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을 구원한 것처럼 저희들을 통해 불쌍한 이들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여 주소서!”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이슬람여인들이 치료를 받으러 와서 목사님의 축복기도에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 주님나라가 임하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였습니다.
이번 단기선교에 참가한 단원들을 바라보면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꾸준히 헌신하는 분들로 인하여 우리 서울교회가 참 건강한 교회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습니다.
운영하는 병원을 문 닫거나 임시의사를 고용하고 과감히 단기선교에 동참한 의료팀, 악취로 진동하는 머리를 잘라주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는 이미용팀, 주중에도 수시로 모여서 프로그램준비와 율동준비를 하던 어린이팀, 단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세밀하게 준비한 주방팀. 단장으로서 바라보기만 해도 은혜 그 자체였습니다.
26명의 단원중 단 한 명도 배탈로 고생하거나 말라리아, 뎅기열 등 풍토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또한, 그동안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신 모든 성도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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