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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서울교회는 원래대로 회복되어야 한다
나의 하나님

위의 그림에서 석양이 지는 밀밭에 두 마리의 까마귀가 날고 있고 농부는 씨를 뿌리고 있다. 밝은 태양은 빛과 에너지의 영원한 근원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은 한 편의 詩다. 시를 읽듯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이 그림에서 땅에 씨를 뿌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상징한다.
서울교회는 1991년에 설립된 장로교회다. 개혁주의 신앙인 칼빈주의(Calvinism)를 신앙의 이념으로 삼고 부흥한 교회다. 교계의 원로인 이종윤 목사에 의해 설립되어 오직 성경과 믿음 등 '다섯 솔라'(Five Solas)를 기치로 내걸고 한국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서울교회가 도입한 목사 및 장로의 안식년제는 보수적인 기독교 사회에서 기득권을 타파하는 혁신적이고 개혁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교회의 안식년제는 목사라고 하더라도 한 번 임명되면 정년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6년 시무 후 1년 안식한 다음 반드시 재신임을 받아야 하는 제도다. 이러한 안식년제는 목사는 물론 장로도 해당하는 것으로서 무사안일주의에 대한 일종의 견제 장치의 의미가 있다. 안식년이란 더 좋은 목회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6년 시무에 대한 교회 구성원들의 평가일 수도 있기에 나태해진 교역자에게는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기에 많은 교회가 선뜻 이러한 제도의 도입을 꺼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혁적인 서울교회는 이 제도를 초기에 과감히 도입했다. 그리고 그동안 잘 시행되어 왔기에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서울교회에 큰 문제가 생겼다. 서울교회 갈등의 이유는 정말 무엇일까? 이종윤 목사 퇴임 후 2대 후임 목사로 박노철 목사는 서울교회 부임 시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안식년 제도를 자신의 차례가 되자 전면 부인했다. 목회자로서의 자질 문제가 대두되었고, 도덕성 문제가 생기므로 재신임의 관문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갈등은 안정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까? 궁극적으로 서울교회는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을 받들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교회의 개혁을 이끄는 선두의 위치에 서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자라야 한다. 성실과 정직은 진정한 신앙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덕목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워야 할 성전이 목회자의 도덕성과 정직성, 그리고 성실성과 신뢰의 문제로 큰 혼란 속에서 빠져 있는 것은 진정 슬픈 일이다.
고독과 더불어 정신병의 고통에 시달린 고흐는 1889년 5월, 생레미의 생폴 드 모졸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6월 18일경 새벽, 요양원 1층 스튜디오의 동쪽 창문을 통해 바라본 동트기 전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고흐는 창가에 기대어 생각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항상 꿈을 갖게 한다.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도에 작은 점으로 표시된 프랑스 지역에 가듯이 왜 별들에게는 갈 수 없는 것일까. 우리가 기차를 타고 타라스공이나 루앙에 가는 것처럼 우리도 죽어서 별들에게 갈 수 있을까." 별은 외롭고 고독했던 고흐가 자신의 가슴속에 간직한 이상의 세계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했던 고흐는 결국 27세의 늦은 나이로 화가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1890년 7월, 고흐는 10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37세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서 그는 기존의 어두운 색채의 그림에서 벗어나 밝은색을 사용함으로써 예술 세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고흐는 가난했지만 정직했고 사랑이 많았던 화가였다. 그의 그림이 당시에는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고흐는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한 믿음이 그를 더욱 그림에 몰두하게 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보듯, 고흐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시를 그렇게 그림으로 그렸다.
고흐의 인생과 그림을 생각하며 심한 갈등에 휩싸인 서울교회를 생각한다. 고흐는 농부가 씨를 뿌리며 사는 것처럼 자신도 부지런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가난했지만 정직했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도우며 한때 복음 사역에 헌신했던 자였다.
신앙생활은 부활의 소망을 갖고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교회의 갈등은 어서 빨리 끝나야 한다. 서울교회가 이미 채택하여 아름다운 전통으로 정착한 안식년제는 서울교회의 목사와 장로라면 누구나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믿음 아래에 바로 선 자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아집을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상처로 얼룩진 서울교회는 원래의 개혁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빨리 원상 복귀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온갖 죄악으로 얼룩진 인간의 철없고 이기적인 행동에 대하여 똑바로 서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이용성 집사 (11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