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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4
조국을 위해 기도의 파수꾼이 되자!
호국의 달 특별 기고문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4시. 북괴군 최고 사령부는 “남반부에서 북침이 개시되었다. 전면 전쟁이 불가피하다. 남반부 국방군의 북침을 격퇴하고 남한을 해방시키자”는 거짓말로 기습 남침하였다.

김일성의 전략 목표는 소련의 세계적화전략에 편승하여 한반도를 공산통일하기 위하여 서울을 최단 시간 내 점령, 그 여세로 한수 이남으로 진격, 부산을 8월 15일이전에 점령하여, 작전을 종결하고 8.15 경축행사를 부산에서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세워 놓았던 것이었다.

기습 남침 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신속히 주일 미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에게 알리고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고, 당시 미국 시간 6월 25일(주일)UN안보리가 긴급 소집되어, 몇시간의 토의 끝에 이는“평화의 파괴 행위”로 규정,즉각 대응하기로 가결했다. 상임이사국(소련)의 사고불참으로 극적인 UN의 결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즉시 맥아더 장군을 UN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7월15일 첫 작전부대인 미24사단 스미스부대가 참전하게 되었으며 계속 우방 전투병 파견 16개국과 의료지원국 5개국이 한국으로 달려와 우리를 도왔다.

백척간두의 이 나라를 긍휼히 여기시는 전능자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고는 설명이 될 수 없는 과정들의 연속이었다.“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 말씀의 현현이요, 대통령으로부터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의 울부짖는 회개와 기도의 응답이었다.

피난길 이승만 대통령의 기도는 간절했다. “일본의 압제에서 우리 민족을 해방시켜주신 하나님 아버지, 저의 늙은 목숨을 조국 통일의 제단에 바치겠습니다. 불쌍한 우리 민족을 굽어 살피사, 통일과 재회의 기쁨으로 안겨 주시고 영세 자유와 평강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의 보잘 것 없는 영혼을 조국 통일제단에 바칠 터이오니 원하실 때 아버지 곁으로 거두어 주옵소서”(6.25와 이승만 대통령 중에서)라고 기도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국난극복을 위한 기도를 끊지 않았다. 피난길 한경직 목사는 대한 기독교 구국회를 결성, 국난 극복을 위한 기도회를 열어, 피난중에 목숨을 걸고 드린 예배는 더욱 뜨거웠고 기도는 간절했다.

부산 초량교회에서는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지켜야 축복을 받아 저주와 진노를 면한다”며 과거 기독교인들의 신사참배와 이로 인한 교계의 교권 다툼으로 인한 한국교회의 죄과를 하나님 앞에 참회하였다. 7일간 밤낮없이 회개 기도가 있은 후 3일 만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이루어졌고, 9월 27일 89일간 공산치하에서 신음하던 서울은 자유를 찾았다. 9월 29일12:00 맥아더 원수는 서울을 대한민국 정부에 넘기는 환도식에서“하나님의 은혜로 인류의 가장 큰 희망의 상징인 UN군은 한국의 수도를 다시 찾게 하셨습니다(이하생략)”라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환도식을 마쳤다.

1951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UN군 사령관에게 위임함으로써 국군 및 UN군은 단일사령부의 지휘 아래 최상의 효율적 방어체계를 구축,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어언 57년 전 민족상잔의 통한을 되새기며, 자유민주우방(특히 미국)들과 유대를 더욱 굳건히 다져서, 폭군 김정일의 오판을 물리치고이 나라의 정체성 마저흔드는 친북∙반미 좌파들의 악령들에게 여호와 닛시를 증거하는 우리나라 되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 하나되고 한 마음되어 졸지 않는 충성된 파수꾼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진 돈 장로(10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