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른 후 물통을 내려놓고 성경을 읽고 말씀 묵상 후 기도를 하고 고구마를 심고 물주는 일을 계속했다. 당시 학보병의 복무기간은 1년6개월이다. 제대1개월을 남겨놓고 금화중등학원에서 심령부흥회를 열었다. 동리사람들을 초청하고 강사는 22세 청년 이종윤군이다. 금화 군청직원의 양복을 빌려 입고 넥타이는 매었지만 양복이 맞지 않아 반팔 양복 입은 느낌을 주었으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흥회 둘째날밤 심혈을 기울여 설교(?)를 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시는 분 그 자리에 일어서라고 초청의 말을 한 후 하나, 둘, 셋…스물다섯, 스물여섯을 세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젊은 나이지만 영양섭취가 부족한 상태에서 밤11시까지 중등학원 강의와 새벽부터 실습, 낮시간엔 쉴새없이 흩어져 있는 군인들의 상담자로, 전도자로 뛰었으니 여기까지 지탱해 온 것만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강대상 앞에 앉아 있던 두 내외가 순식간에 쫓아올라와 응급진료를 하고 곧 병원으로 운송되었다. 그 두 내외분은 의사들로 전 주간에 금화 와수리에 이사와 병원 개업을 하고 오늘 부흥회에 참여한 성도들이었다. 할렐루야!
이종윤은 그 다음날 퇴원하고 다시 저녁에 예정대로 집회를 마쳤다. 대대장께서 이종윤의 소식을 받고 그는 연대장에게 상신하여 이종윤을 제대일 3주전에 귀가키로 결정했다.
심령부흥집회를 인도한 이종윤은 또 한사람의 천사를 만난다. 위문품을 걷기 위해 서울 이화여고를 방문시 당시 종교부장이셨던 오주경선생님이 이종윤을 보자 나는 평생 딸들만 키웠는데 내가 이선생을 하나님의 종으로 키우는 일에 한 몫을 하고 싶다 하시고 여름방학에 이화 졸업생(대학생)들을 데리고 농촌전도단을 구성하여 강원도 금화를 방문하여 농촌전도사역 중 이종윤의 전도집회에 참여했다가 연대장의 호의로 귀가 조치를 받은 이종윤을 데리고 철원기도원으로 들어가 일주일동안 심신의 휴식을 취하게 한 후 귀가케 했다.
그 해 복학을 하기 위해 학교에 가 보니 누가 이종윤의 등록금을 이미 지불했다고 한다. 후일 안일이지만 오주경선생님이 위문품을 거두기 위해 이화를 찾아온 이종윤의 눈초리에 중압감마저 느꼈다면서 이 사람을 키우자는 생각을 굳히셨다 한다. 후에 감신대 총장을 지낸 변선환목사가 교목이었는데 그는 현역군목이면서 이화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변목사가 자매부대를 갖고 있는 학교에 찾아와 위문품을 달라느냐고 군목대위가 이등병 군종하사관을 향해 힐책을 할 때 이종윤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당신이 군목이면 전방에 가본 적이 있느나고 호통을 치며 자매부대 있는 학교는 다른 부대 돕지말라고 성경 어느장에 기록되었느냐고 되물었다. 이때 오주경 선생님과 서명학 교장선생님이 달려 나와 두 사람의 다툼을 말리면서 위문품과 위문편지를 드릴터이니 내일 채플시간에 와서 전방얘기를 해주시고 설교도 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60세가 넘으신 오주경 선생님은 이종윤을 아들처럼 돌보면서 여러차례 중매도 해주었지만 이종윤은 목사의 소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방해되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독신주의를 말 없이 고수해왔다. 어쩔 수 없이 선을 보러 나가면 인사한번 하고 뒤돌아 나오는 일을 몇차례 하고 나니 오주경 선생님도 중매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주경 선생님은 너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있지 라는 질문을 해왔다. 이종윤은 소스라치게 교회에서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생각을 더듬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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