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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3
철저한 사명의식으로
제1, 2스데반회 특강

스데반 2010년 막바지를 맞으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기 위해 1, 2회가 연합하여 월례회를 가지며 이종윤 목사님의 특강을 들었다. 지난 10월 1일(금) 있었던 이번 스데반회는 피택 집사까지 163명이 모인 가운데 사뭇 진지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종윤 목사님은 ‘마지막 아담, 살려주는 영’(고전 15:22, 45-49) 제하의 말씀을 주시며 신학이 없는 성경은 뼈 없는 살 같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하며 설교는 반드시 정립된 신학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하며 이런 의미로 고린도전서 15장 말씀을 조직하고 체계화 하여 살려주는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담과 대조하여 말씀하시며 본문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짧은 구절 안에 창조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그 인간의 죄와 타락,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말씀을 마치신 후 이 목사님은 자신의 목회 철학을 피력하며 이후에 서울교회가 나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 목사님은 40대에 할렐루야교회를 개척하시고, 이후 충현교회 담임을 맡으시며 말씀 목회와 기도 목회로 부흥했던 일을 상기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목회 철학은 God's Ministry(하나님의 목회)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의 서울교회는 그간 지향해왔던 3E(Evangelism, Holy Expenditure, Education)와 거듭난 인간, 성숙한 신자,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천국시민 양성 이라는 교육 목표 그리고 ABC(Ardent Player 열렬한 기도, Biblical Preaching 성경적 설교, Consistent Program 일관성있는 프로그램)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하며 이제 서울교회는 개교회가 아니라 다른 교회를 섬기는 교회라는 사명의식을 철저히 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 목사님은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할 스데반회에 서울교회의 앞날을 당부하시며 당회를 존경하고 성도를 정성으로 섬기며 부디 하나님 앞에서 서울교회가 받은 비전을 잘 이루어나가라고 했다.

다음은 이목사님의 특강‘마지막 아담, 살려주는 영’텍스트를 요약한 것이다.

Ⅰ.아담 -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Adam-Christ figure?)

① 48절에서 아담은 흙에 속한 자를 대표한다. 반면에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이를 말한다. 49절에서 우리는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음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 즉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을 것이라 한다.(롬8:29, 빌3:20)
② 아담-그리스도의 대조는 특유의 대표성과 공동체를 대신한다. ‘한사람이 순종하지 않은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사람이 순종하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5:18,19) 예수님은 이것을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 부르셨다.(눅22:20) 사도는 우리가 ‘새 언약의 일꾼’되도록 부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살려주는(Life-Giving) 영은 마지막 아담이다. 이와 같이 예수는 히브리서에 의하면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시고(히7:22),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했다.(히8:6) 즉 새 언약의 중보자(히9:15, 12:24)시다.
③"첫 사람 아담은 생령(living soul)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Life-giving)이 되었나니"(고전15:45) 여기서 아담은 타락한 죄인으로서 아담이 아니라 타락 전 하나님 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 아담이다. 반면에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주 곧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는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이란 적어도 다른 아담 또는 마지막 아담이 있다는 뜻이다.
④고전15:45에서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함과 같이"에서 접속사의 기능은 44절에 말씀 된 것 즉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44b)과 연결된다. 43절이하에서 바울은 부활전과 부활의 몸을 양극으로 묘사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부활전의 몸은 육의 몸이라면 부활의 몸은 신령한 몸, 즉 성령으로 변화된 생기 띤 몸이다.
⑤45절에서 '첫 사람 아담'이란 그 이전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아담'(45절) 또는 '둘째 사람'(47절)이란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엔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언약의 역사에 다른 분은 없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도 인간을 대표한 언약자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둘째 사람이면서 마지막 사람이다. 그리스도 이후에도 없고 그리스도가 언약의 마지막 사람이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시고 대표가 되신다.(48-49)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죄로 인해 부패와 죽음을 가져온 첫 사람이 되었고 그리스도는 부패하지 않은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되었다.

Ⅱ.살려주는 영 (The life- giving Sprit)
여기서 살려주는 영은 그리스도다. 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지막 아담이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 했는데 언제 되었나?
①영적인 사람은 성령으로 변화된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45절의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살려주는 영) 마지막 아담은 단순하게 영이 되지 않았다. 살려주는 영(Life-giving or Life producing Spirit)이 되었다. 이 영은 실재할 뿐아니라 행동을 한다. 따라서 고전15:45의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
②살려주는 영이 되셨다.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가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 반대로 살려주는 영으로서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또한 47절은 마지막 아담을 둘째 사람이라 부르면서 그는 하늘에서 나셨다 한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말한다. 하늘에 속한 자(48)라 했다. 살려주는 영이 되신 마지막 아담은 특별히 승천하심을 포함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말한다.
③살려주는(Life-giving)일은 그리스도의 미래 사역이다. 그가 부활할 때 신자들의 죽을 몸이 부활할 것이다.(22) 신자의 부활한 생명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하는 것은 미래사항 일 뿐아니라 현재 일이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이미 살려주는 교회안에서 성령의 부활케 하시는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부활은 already but not yet구조다.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뿌리를 두고 살려주는 영으로서 일하신다.
④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이미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의 머리이시고(22) 그의 재림시에 우주적이고 종말론적 주되심이 나타날 것이다.
⑤고전15:45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혼란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특별한 의미를 보여준 것이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깊은 의미에서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성령의 능력을 선언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전에 없었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롬1:4) ‘그리스도가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계시니’(고후13:4) 그리스도는 부활과 승천으로 전에 갖지 않으셨던 영광스런 인간이 되셨다.
⑥고전15:45은 바울의 기독론과 성령론의 중심일 뿐만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성령사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선언이다. 성령과 그리스도인 삶에 대한 교훈들의 주춧돌이 되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이기 때문에 종말론적이어야 한다. 성령의 임재가 그리스도의 임재요,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다는 것은 성령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 다. 그리스도께 속하기 위해서는 성령에 의해 소유되어야 한다.

Ⅲ.살려주는 영과 오늘의 교회(The life-giving Spirit and the church today)
①성령과 종말은 바울에게는 분리될 수 없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살려주는 영이신 그리스도와 연합을 추구하면서 필연적으로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가.
②사랑은 은사가 아닌 성령의 열매다. 이 열매 속에서 성령의 종말론적 터치(touch)를 경험한다.
③그리스도인의 고난이 성령의 종말론적 삶속에 있다. 이 세상은 승리주의 또는 번영의 신학을 좋아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정리 허숙 권사(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