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유월, 어머니와 강원도에 위치한 오색그린야드호텔에 다녀왔습니다. 정년퇴임을 앞둔 전국의 교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가 열리는 중이었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과 노후 설계에 관한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세미나에 들어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며 2박 3일동안 우리 모녀가 지나온 세월들을 돌이켜 볼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교단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시고 이십여 년 동안 가족을 돌보며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강단에 서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직후였습니다. 어머니 연세 51세 되시던 해였는데, 중년을 바라보는 제가 이제야 헤아려보는 것은, 얼마나 젊고 연약한 한 여인이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떠나신 빈자리를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으로 채우고자 하셨습니다. 20여년 만에 다시 교편을 잡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교재를 연구하고 학교 행정을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근면성실하신 성품으로 이듬해 우수교사상을 수상하기까지 어머니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그즈음 저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는데, 우리 모녀는 밤늦도록 마주앉아 책을 보고 함께 학교에 제출할 서류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지아비를 잃은 슬픔과 새롭게 직장생활에 적응하는 어려움, 가정을 이끄는 가장의 역할을 맡아 많은 것을 결정하고 감당해야 하는 시련이 어머니를 거쳐갔지만, 어머니는 늘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삶으로 동생과 제게 힘을 불어넣어주셨고, 기도할 수 있다는 기쁨,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며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돌보신다는 믿음을 잃지 않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습니다.
올해로 어머니는 63세를 맞아 정년퇴임을 하고 다시 새로운 노후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길지 않은 교단생활이었지만 어머니의 퇴임식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동료 교사들의 진심어린 축복과 안부가 오고갔고 어린 학생들의 정성어린 편지들과 꽃다발들이 그간의 어머니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이 날은 제가 소원하던 대학에 전임교원으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받아, 어머니는 더 큰 축하 속에 학교를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올 여름, 어머니는 두꺼운 안경을 끼고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으며 여직도 학교와 학생들, 동료 교사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고 주야로 찬송을 부르십니다. 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더 잘 감당하기 위해서 오래 미루어왔던 이비인후과 치료도 적극적으로 받고 계십니다. 세상에서의 직분을 내려놓았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은 앞으로 더 열심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맡기신 일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한 길을 걸어오신 어머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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