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창 1:26) 그 하나님의 형상은 5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곧 영적존재, 사랑의 본체, 창조본능, 공동체적 존재, 자유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그 둘째인 사랑의 근원과 본질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인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가까이 하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고 하시며 그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고도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순종하기보다는 오히려 거역하였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였으며 내 뜻대로만 살아가고 있음을 묵상하면서 깊은 회개의 늪에 빠져들 때가 있지요.
내게 아부하는 자가 더 좋아서 그를 더 믿었고 나보다 많이 가진 자에게 더 가까이 하려고 했으니 우리는 속사람이 아닌 겉 사람만을 보는 얄팍한 인성에 실소(失笑/어처구니없는 웃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높은 지위에 있는 자에게 더욱 아첨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기에 하나님은 사도신경을 통하여 누구를 믿을 것인가, 십계명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주기도로 거룩한 삶의 길잡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후예이기에 내 뜻이 가장 먼저이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볼 수 없는 눈 먼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인 교회가 되어야 하지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1 2:16)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나, 옛적에 아담과 하와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창 3:6)에 홀린 것과 같은 그들에게서 스스럼없는 우리들의 추악함을 볼 수가 있지요. 얼떨결에 하나님을 뒤로 하고 자신이 앞장서는 모습에서 스스로의 연약함을 바라봅니다.
약 50년 전 제가 주님을 모르던 이방인이었을 때 아내를 통하여 저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떠올려 봅니다.
‘어린 아이를 업고 밥을 얻으러 온 애기 엄마(거지)를 안방에 모셔놓고 대접하여 보내던 아내의 신행일치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 한동안 다투다가 급기야 교회를 나가야만 알 수 있다는 아내의 마지막 해명에 이끌리어 주님을 영접하게 된 저의 초라한 모습을 돌이켜 반추(反芻/되새김질)해 봅니다.’
하나님은 이 종을 불쌍히 여기시어 구원의 팔을 내밀어 아내를 징검다리로 사용하여 주시었으니 그 크신 은혜를 이 작은 가슴으로는 다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나의 가문을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위대한 역사를 돌이켜 보고 부끄러운 저의 믿음의 역사를 밝히면서 자랑이 아닌 간증으로서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또 우리 사랑하는 교우님들의 가정들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복된 가정들이 다 되시기를 바라며 교회의 3대 비전(천국시민 양성, 만민에게 전도, 빈약한 자 구제)를 끝까지 이루어가는 우리 교회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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