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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8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II
 

본문 : 시편 23:1-6

시편 23편은 시편 150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시이며 또한 가장 사랑받는 시입니다. Spurgeon 목사님은 시편 23편을 ‘시 가운데 있는 진주’라고 했습니다.
이 시에는 의심도 염려도 두려움도 불안도 없습니다. 이 시는 핍박받는 사람, 고난 받는 사람, 병들어 있는 사람들을 위로의 말씀으로, 또 권면의 말씀과 축복의 말씀으로 주어집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구약에서만 4천 번 이상 나오고 있으며 호렙산에서 타지 않는 가시떨기 나무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으로‘나는 나다(I am that I am)’라는 뜻의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으로 초시간 속에서 자존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의 지혜나 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도움이나 봉사도 받으실 필요가 없고 누구에게 무엇을 전가시키실 필요가 없으신 분으로 자존자(自存者self-sufficiency) 하나님이십니다.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 영원하시고 동일하신 분, 영원불변하신 분이시며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나 고대 근동 지역에서 목자란 아주 천박한 직업입니다. 그래서 목자가 꼭 필요하다면 가족 가운데 쓸모없는 사람을 시켰습니다. 목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춘하추동 양과 함께 있으며 양들을 먹이고 보호해야 합니다. 목자는 오늘날 표현대로 하면 3D(dirty, dangerous, difficult) 직종에 속합니다.
그런데 천지의 대주재가 되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어“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친히 말씀하시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목자는 99 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기 위해 밤새 헤매다가 마침내 찾고서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왔다는 비유를 하시며 그 목자가 곧 자신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목자로서 우리를 찾으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먹여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 예수님은 자신의 양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이름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형편과 처지까지도 아십니다. 우리가 이리가 아닌 한 우리는 주님의 참 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양무리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양된 우리는 그 하나님을‘나의 목자’라고 부를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나의 목자’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2.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감사와 현재에 대한 만족,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말합니다. 사실 양에게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계시고 무한하시며 전능하고 불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면 우리는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충만하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제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의 돌보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천지만물을 소유한 자보다 더 큰 부자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시131:1)“,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 6:34). 성도는 자기 분깃 밖의 것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자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D. L. Moody 목사님은‘네 부요가 소유가 많은데 있지 않고 소원이 적은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소원을 적게 한다는 것은 소원을 단순화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밖의 다른 것을 소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소원하며 살면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성도는 어디서나 족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잠자는 자는 만족합니다. 잠에는 빈부의 차별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우며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족한 줄로 알고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3.선한 목자의 돌보심을 받는 성도가 부족하지 않은 것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2절).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사람에게는 쉴 곳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평안이 충분하게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Philip Keller 목사는 시편 23편을 묵상하다가 8년간 목자 생활을 하고서 다시 목회의 자리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저서‘목자가 본 시편 23편“에서 양은 좀처럼 눕지 않는다고 합니다. 양은 적어도 4가지 조건이 맞아야 눕는다는 것입니다. 겁이 없을 때, 자기들끼리 마찰이 없이 자유로울 때, 해충이나 기생충의 침범이 없을 때, 배부를 때 다시 말해서 양은 만족할 때 눕는다는 것입니다. Keller 목사에 의하면 양은 목자가 믿음을 주고 평안감과 해방감을 주며 목초지를 제공해서 배불리 먹게 해 줄 때 비로소 눕는다고 합니다.
시편 23편 초두에서 쉼을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쉼을 얻고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쉼을 얻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사람은 참 평안을 얻게 될 터이니 이 복을 받고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고 이종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