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편 42:1-11
시편 42편-72편은 시편 2권으로 분류됩니다. 시편 1권에는‘여호와’라는 단어가 272회‘, 엘로힘’이 15회가 나오는 반면, 2권에는‘엘로힘’이 164회,‘ 여호와’가 30회 나옵니다. 1권은 거의가 다윗의 시(37편)이고, 2권은 다윗의 시가 18편,고라 자손의 시가 7편, 그리고 솔로몬과 아삽의 시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나로 되어 있는 시편 42, 43편은고라 자손의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다윗의 시와 유사하므로 고라 자손이 보관하고 있던 다윗의 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표제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고라 자손의 시로 읽습니다.
고라는 레위지파 사람으로 모세와 아론을 가장 가깝게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모세와 사촌 간으로한 할아버지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라는 모세를 시기하여 적대시 하다가 마침내 250명의 불평분자들을 규합하여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부끄럽게 죽었습니다(민 16장).
그러나 반역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던 고라 자손 중에는 하나님을 잘 섬긴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전의 문지기로, 성막의 수직 책임자로, 특별히 후일에는 다윗의 악사로, 성전 찬양대 지휘자로 충성스럽게 봉사했습니다. 이들이야 말로 선조보다 나은 후손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영적으로 낙심하고 있습니다.
1. 영적으로 낙심하는 이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낙심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성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성전이 없다면 하나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는사람은 쉽게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시온산 성전예배와 멀리 있었던 이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자라고 느꼈습니다. 시인은 얼마나 갈급했는지 자신을 사막에서 물을 찾는 사슴으로 비유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6절). 미살 산은 낮은 언덕으로 그의 조상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미살이 어디에 있든지, 그 곳이 가정이든 고독한 곳이든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믿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실직, 실패, 은퇴, 이혼, 질병에 시달리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과 좌절과 고통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성전에서 멀리 있는 시인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는 불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심한 비방과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3, 10절). 고대 사회에는 무신론자가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한 조롱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당신을 포기하고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과거를 적당히 회상하는 것은 영적인 삶에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과거를 회상하므로 현재의 고통을 더 가중합니다. 또 폭풍같이 밀려오는 고통 앞에 낙심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앞에 회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길은 체험할 수없고 가혹한 시련이 계속 될 때, 경건치 않은 자∙속이는 자∙악한 자가 성공하고 나는 공격을 받을 때 사람들은 선을 행하다가 영적으로 낙심하게 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를 낙심케 하는 원인들은 안팎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어 우리를 낙심케 합니다.
2. 영적 낙심의 치유
세상에는 잘못된 진단도 많지만 잘못된 치료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회피하므로 문제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것은 궁극적 치료법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의 도우심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자이므로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5절)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약속하신 바를 버리시거나 바꾸지 않으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과거에 잃어버린것을 바라보는 대신 다가올 미래에 주실 좋은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요셉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니엘과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3. 주의 빛과 진리로 인도 하소서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곳에 이르게 하소서”(시 43:3).
성도에게 가장 행복한 상태는 ‘임마누엘’의 상태입니다. 상대적으로 성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의 상태입니다(삼상 4:21).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애니 호크스 여사의 찬송시처럼 하나님과 유리된 삶은 어둡고 침울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인도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빛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신 얼굴빛이요, 진리는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을 말합니다. 성도는 악이나 근심의 수렁에 빠질 것이 아니라 주의 빛과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주의 성산에 이르러 주의 장막에 거해야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5절). 사람들은 이기적이어서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성도는 낙심 대신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낙심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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