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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6
성도의 애가
 

본문 : 시편 39:1-13

시편 39편은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시인은 본편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습니다. 영어의 amusement(즐거움)는 muse(묵상, 심사숙고)와 부정사 a(아니다)의 합성어로 생각이 없다(not thinking)는 뜻입니다. 시편 39편은 이것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시편 38편은 병들어 죽게 된 다윗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39편에서는 다윗이 인생의 덧없음을 말합니다.

시편 39편의 제목인 여두둔은 다윗 외에 사람으로 처음 나온 개인 이름입니다. 여두둔은 아삽과 헤만과 함께 다윗에 의해 임명된 음악가 중 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공예배를 인도했습니다.


1.침묵의 고통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1절).

시인은 침묵하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속에서는 뜨거운 불이 끌어 오르고 있지만 그는 그들 앞에서 말하기를 거절했습니다.

다윗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주변에 악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로 가져가 고뇌를 털어놓고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 같은 행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2.인생무상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4절).

사람을 쫓아다니며 말을 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허무뿐입니다. 다윗은 인생무상을 말합니다.
5,6절에는 히브리어 'hebel(허사‘)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은 영어로 a breath, invain으로 헛되다는 뜻입니다. 전도서 기자는“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헛되도다”(전 1:2)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리 성공을 해도 그것은 모두 헛수고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같은 허탄한 인생을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씀합니다(약 4:13-16).

시편 39편에는 ‘허사’라는 말이 3번 나오는데 그 중 2번은 셀라로 끝납니다(5, 11절).셀라는 중지하라, 숨을 잠깐 끊고 소리를 높이라는 뜻의 음의 부호입니다. 다시 말해서 강조해서 읽으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구합니다(4절).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다윗은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4절은 고난이 극심하여 죽음에 직면하였다거나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시간이 너무 짧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이 짧고 불확실함을 분명히 알게 하시어 자신을 보게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절).

다윗은 하나님께 돌이킴으로 이 진리를 배웠습니다. 그는 인생이 덧없음을 배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뜻하신 어떤 것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인생의 덧없음은 어떤 사고가 아니고 뜻이 있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수수께끼 같은 인생이기 때문에 인생의 날은 짧은 것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인생이 짧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3.나그네 인생
약하고 빨리 지나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을 하나님이 심하게 다루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래서 욥과 다윗은 같은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작고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신데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은 왜 간섭하십니까? 나는 하나님께 영향을 끼칠 수도 없고 해할 수도 없는데 하나님은 왜 나를 잊지 않으시고 나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까?’

그 대답은 매우 모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 후에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심판대에 서야 할 나그네 인생입니다. 12절의 나그네는 다른 뜻으로 외국인입니다. 나그네는 또다른 말로 순례자입니다. 결국은 나그네 철학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순례자의 모델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을 주셨지만 결코 그 땅을 소유한 적이 없었습니다. 신약에서도 순례자의 모델을 수없이 찾을 수 있습니다.(벧전 2:11, 히11:13).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을 사셨지만 그의 생애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 산다면 우리의 삶이 짧든지 길든지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인생은 낭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천 년처럼 살고, 천년을 하루처럼 사는 것이 성도가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시인은 심한 질고 중에도 묵묵히 고난을 견디며 불평을 토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인생의 무상함과 무의미함에 생각이 미치자 마침내 하나님 앞에 자신의 깊은 고뇌를 쏟아놓습니다. 그리고 소망은 주께 있으므로 하나님께 자신의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사람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면서 절망합니다. 또 그 원인이 타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참회하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징계라고 생각하면서 순응하게 됩니다.시인은 자신의 질고가 죄 때문임을 알고 있는 까닭에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

그는 조용히, 부르짖으며, 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합니다(12절). 다윗은 나그네 같은 자기생명이 떠나 없어지기 전에 용서받은 증거로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합니다(13절).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용서 받은 자로 살다가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화려하게 살아온 삶일지라도 징계 아래 죽는다면 실패한 삶이 됩니다. 징계 받아 죽기보다 건강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고 이종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