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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6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시편 37:1-11)
 

본문 : 시편 37:1-11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 중 ‘점진적 계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약에 말씀한 것이 신약에 와서 완성되는 것을 계시의 점진성 (Progressive Revelation)이라 합니다. 가령 구약에서는 죽음에 대해 말씀하지만 신약에 와서는 죽음 넘어 천국에 대해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복음의 초점을 천국에 맞추시고, 사도 바울 역시 천국 복음을 계속 선포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계시의 점진성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속죄교리에서도 구약에서는 출애굽 사건, 홍해 사건 등이 나열되어 있는데 신약에는 구원으로 들어가는 영적 출애굽을 말씀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바치고 속죄를 받았습니다만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단번에 죽으심으로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영원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점진적 계시가 나타납니다.

시편 37편은 점진적 계시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시편 37편은 9, 11, 22, 29, 34절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의인은 땅을 차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팔복을 말씀하실 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 할 것임이요”(마 5:5)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37:11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은 천 년이 지난 후 예수님의 산상보훈을 오히려 해설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난과 고통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합니다. 소위 인과응보의 법칙을 믿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의인에게도 고난은 옵니다. 그러나 의인의 고난은 짧고 악인의 고난은 끝이 없습니다. 의인의 고난은 길어야 이 세상에서의 고난이고, 악인의 고난은 영원합니다. 반대로 악인의 형통은 짧으나 의인의 형통은 영원합니다. 시편 37편의 4, 5, 16,25절 등은 잠언과 같은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악을 쓰고 자기만 살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어떻게든지 득세해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시편 37편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풍성한 화평으로 즐긴다고 말씀합니다.


1. 누가 온유한 자인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1절).

시인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그것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 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의의 길을 걸어가라고 합니다.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은 3번이나 반복된 본편의 주제입니다(1,7,8절). 불평은 악을 만들 뿐입니다.‘불평하지 말라’를 영어성경에서는‘do not get heated’라고 해석합니다. 의인을 희생 제물로 삼고 악인이 득세할 경우에 의인은 더욱 괴롭습니다. 본편은 3-11절에서 이에 대해 두 가지 대답을 합니다. 하나는 위를 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앞을 보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에 대해서 눈을 감고, 심지어 자신에 대해서도 눈을 감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본편은 하나님 지식과 사랑을 가지고 경건한 삶을 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①여호와를 의뢰하라(3절).
의뢰하라는 것은 믿으라는 말입니다. 의뢰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출발점입니다. 믿는 것은 수동적이면서 능동적인 행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인간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3절)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새사람이 되고, 새사람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그래서 중생 없는 칭의는 있을 수없습니다. 아무리 선을 행해도 그것으로 의로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아는 지식에 동의를 해야 하고, 동의된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입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행위가 있어야합니다. 세상 사람은 모두가 자기를 위해 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②여호와를 기뻐하라(4절).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 대항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분이시고, 지금까지 창조능력으로 다스리시고, 유지하시고, 보존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도덕주의자, 엄격한 규범으로심판하시는 분, 그리고 자기 목적만 이루어 즐기려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거룩하시고, 주권을 가지신 분이고, 경외해야 할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시고 사랑과 동정과 친절의 완성자이십니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우리는 그 안에서 더 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입니다(히 11:5). 동행했다는 것과 기쁘게 했다는 것은 동의어입니다. 하나가 히브리적 표현이라면 또 하나는 헬라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어리석게 소원한 것까지 다 이루어 주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③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5절).
하나님께 자신의 길을 맡기는 것은 그를 의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하나님께 길을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맡기라’는 말은 ‘굴리라(roll)’는 뜻입니다. 우리의 어깨 위에 있는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로 굴려 보내라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우리는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염려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을 그 날에 족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고 이종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