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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0
위대한 자의 위대한 고백
 

본문 : 시편 32:1-11

누가 위대한 자입니까? 위대한 고백을 하는 사람은 위대한자입니다. "나는아무것도할수없는죄인입니다.”라는 말은 바울을 바울 되게 한 위대한 고백입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와 더불어 간음죄를 짓고 다시 이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최전방으로 나가 전사하도록 하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얼마나 회개의 눈물을 흘렸는지 눈물로 침상을 띄웠다고 했습니다(시 51편).
다윗은 먼저 시편 51편에서 큰 회개를 했고, 회개의 결과로 받은 하나님의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 교훈으로 남긴 시가 시편 32편인 것입니다. 이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시편 32편의 제목이 ‘다윗의 마스길’입니다. 마스길이란 교훈 혹은 묵상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편 32편은 다윗이 다른 사람에게 교훈하기 위해서 쓴 시입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다윗의 간증에 믿음을 통한 은혜로 의로워진다는 자신의 논지를 첨가하며 시편 32편을 두번 인용합니다. 이 시는 또한 어거스틴이 매우 사랑한 시로서 그는 죽기 전 이 시를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자기 침대 옆에 벽에 써 붙여 놓고 묵상했다고 합니다. 어거스틴이 이 시를 좋아한 까닭은"지식의 시작은 자신이 죄인 됨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참으로 복있는 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죄는 복이 있도다”(1절).
시편 1편에서 복있는 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시편 1편의 복과 여기서의 복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 1편에 나온 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시편 1편에서는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자가 복되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시편 32편은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지 못한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회복의 기쁨을 알게 하는 복을 말합니다. 시편 32편은 히브리시의 대구법의 모델로서 죄를 3가지 다른 말로 표현하고 하나님께서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설명합니다. 시인이 서두에서 강조한 것은 자기의 내면적 불안이나 육체적 고통의 원인은 바로 자기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면 서도 원수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1)허물의 사함을 받는 사람
죄의 깊이를 알고 있는 다윗은 죄를 먼저 허물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1절). 허물은 히브리어로‘페샤’라고 읽으며 거역하는 것, 실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권위에 대한 항거와 같이 외적으로 나타난 죄를 의미하는 허물은 사람에게 대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를 세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사오니”(시51:4), 다윗은 분명히 밧세바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지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 지은 죄를 비추어 볼 때 다른 죄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로부터 허물의 사함을 받는 사람을 가장 복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는 것은 다른 표현으로 죄가 날라 간다고 합니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십자가로 가는 기독교인의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의 무거운 짐을 그의 두 어께에서 벗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떨어져 구르기 시작해서 그가 무덤의 입구에 왔을 때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이와 같이 우리는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이요, 죽기까지 감사해야 할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동이 서에서 멀 듯 죄를 우리에게서 옮기신다고 했고(시 103:12), 우리의 죄를 기억도 안하신다고 하셨습니다(사 43:25).

(2)죄가 가려진 사람
두 번째 죄는 헬라어로‘하말티아’로 읽으며 표적에 빗나간 것 또는 미치지 못해 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미치지 못하는 것, 하나님 말씀에 부합되지 못한 것은 큰 죄가됩니다. 세 번째 죄는 부정, 정죄를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하원’이라고 읽으며 부패한 것, 그릇된 것, 굽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에게 대항한 것, 율법의 관계에서 율법에 미치지 못한 것, 자신과의 관계에서 바른 표준에서 삐뚤어진 것을 정죄라고 합니다.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 즉 덮어준다는 것은 속죄의 날을 연상케 합니다. 속죄의 날에 이스라엘의 대 제사장은 성전뜰에서 희생 제물로 짐승을 잡아 피를 취하여 시은소에 뿌렸습니다. 시은소는 법궤를 덮고 있는 뚜껑이며 하나님이 임재하는 처소입니다. 시은소는 깨진 율법, 곧 하나님이 심판으로부터 죄인을 감싸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시은소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행동인 달랜다, 화해 한다는 뜻이 있으나 히브리어는 덮는다, 가려진다의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은소가 죄를 가려주고 덮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덮어주신다는 말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출 수 있는 죄는 없습니다. 작은 죄를 지었든 큰 죄를 지었든 결국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진 자는 진실로 복 있는 자입니다.

(3)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반드시 내리시는 그 징벌을 받지 않는 자는 복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죄인에게 죄를 전가 시키지 않는다는 말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의 죄를 계산하지 아니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시편 32:1을 인용하면서"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을 복이 있도다”(롬 4:7-8)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교훈(마스길)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이 아직도 복을 받지 못했다면 당신은 용서가 있는 예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행한 죄가 어떤 것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모든 사람, 모든 죄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용서가 있는 축복을
받은 사람은 기쁨 중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니 이 복을 받으시고 누리시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고 이종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