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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6
복 있는 사람
 

본문 : 시편 1:1-6

시편 1편은 시편에 있는 모든 시의 주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복 받는 길과 멸망하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이 때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게 됩니다.
성경을 최초로 라전어로 번역한 신학자 제롬은 “시편 1편은 시편의 입문서로 시편 전체의 서론이다”라고 말합니다. 시편 1편은 실제적인 시로서 복 받는 길과 그것을 이루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반면 복을 받지 못하면 영원히 멸망 당한다고 경고합니다.

1. 두 개의 길
인간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악한 마음이요 또 하나는 지혜의 마음입니다. 만물보다 악한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에게는 선한 마음, 지혜의 마음, 믿음의 마음이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이 두 가지 마음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느 편에 설것이며, 어떤 길을 갈 것인가를 반문하면서 결정을 촉구합니다. 시편 1편이 이렇게 유명한 것은 저 세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 곧 죄 중에 사는 인생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사는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구원의 자녀가 될 수 있다면 그는 복 있는 사람이 되며,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2절).
본문은 3절까지 경건한 사람들의 삶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복을 받은 사람으로 구원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적극적으로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1편은 대칭법을 사용하여 본문을 3 세트로 나누어 대칭하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비교하며 내용을 강조합니다.
첫 번 세트는 세 가지로, 따라가고, 서고, 앉고, 두 번째 세트는 꾀, 길, 자리, 세 번째 세트는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를 대칭시키며 인간이 죄중에 거할 때 점점 악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인간이 악한 사람의 꾀에 빠지면 죄인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오만한 자가 되고 말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죄의 점진적인 발전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합니다. 변증학자 C. S. Lewis는“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매우 신비롭고 우리를 당황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임재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의 속성은 기뻐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 하며 송이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그렇게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나지만 죄를 좋아하는 사람은 죄의 길을 사랑하고 쫓아갑니다.

2. 두 길의 결과
옳고 경건한 삶을 산 이들에게는 상급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가르치는 것은 상급 자체가 아니라 특별한 삶의 결과입니다.
시인은 두 길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두 개의 형태를 사용합니다.
그 하나는‘열매 있는 나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시냇가에 심겨 거기서 양분을 공급 받아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축복의 삶을 살게 되거니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메
마른 사막에서 사는 것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해 나무가 말라죽는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됨을 말합니다.
또 하나는“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입니다. 팔레스타인의 타작마당은 언덕 위에 있어 항상 바람이 붑니다. 알곡은 곳간에 들이지만 타작마당의 겨는 바람에 의해 공중으로 날아가는데
악한 자의 모습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겨는 악인에게 주어질 공허함, 무익함, 무가치한 삶을 의미하며 또한 심판을 뜻합니다.

3. 두 길의 마지막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6절).
이 말씀은 시편 전체의 주제로서 두 개의 길을 각각 가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묘사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여기 어떤 길은 악인의 길을 말합니다. 의인의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하시며 자기를 따르는 이들을 지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성경학자 Harry Ironside가 팔레스타인을 방문하여 유대인과 아랍인들 앞에서 시편 1편을 읽어주며 여기서‘복 있는 사람’이 누구를 말하는가?'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분은 악한 자와 함께 걷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했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않으신 절대적으로 무죄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대중들은 그는 과연 모세인가 아브라함인가 다윗인가 설왕설래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죄를 지은 사람들로 결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 동안 침묵이 흐른 후 한 늙은 유대인이 말하기를 자기가 신약성경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책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은 나사렛 예수를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완전하신 분입니다. 죄인의 구주요 우리에게 시편 1편의 삶의 길을 보여주고 그렇게 살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쉽고 빨리 가는 길 보다는 바른 길, 옳은 길로 가신 분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을 힘입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고 이종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