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에서 예수께 부여된 가장 최초의 타이틀은 말씀(ho logos 1:1)이다. 요한복음서의 서론은 다른 세 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서론과 아주 다르다.
마태와 누가는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태는 구약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히브리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을 한다.(1:1) 본래 이방인이었던 이들을 상대로 쓰여진 누가복음은 예수의 조상으로 아담까지 올라간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수세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를 유대인으로 동일시하고 누가는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였으나 요한은 인류의 시조 아담을 지으신 말씀(Logos)이 예수라고 한다.
창세전에 그 말씀(the Logos)은 있었다. 요한의 이 놀라운 표현은 우리를 시간의 대양인 영원으로 끌고 간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말씀과 연결이 된다. 말씀과 창조의 관계를 요한은 성육신 교리와 계시로 표현한다. 전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그리고 후자는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요1:14)로 말씀하고 있다. 수백년동안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비를 즉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려 노력해 왔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을 볼 수있게 된 것이다. 하늘에서 초월적인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문자적으로는 우리 중에 그의 텐트를 치시게, eskenosen)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아들 나사렛 예수를 통해 계시하셨다. 말씀을 예수님과 동일시 하신 것은 요한복음 서론의 17절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수가 말씀(Logos)과 동일시 된 그 말씀은 요한문서에만 있는 특별한 것이다. 요한복음 이외의 문서에서 Logos는 요한1서 1:1과 요한계시록19:13에서 하나의 타이틀(a title)로 쓰였다. 신약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씀’(the Logos)이라는 용어가 예수에 대한 가장 중요한 타이들(title)은 아니지만 요한의 기독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로고스(Logos)라는 용어는 요한이 만든 것은 아니다. 희랍의 스토익(Stoic) 철학자들이 일찍이 사용했다. 주후 50년 경에 죽은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는 희랍과 히브리사상의 교량을 만들기 위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필로는 스토익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세상에 편만한 이성(reason)의 원리로서 로고스 개념을 사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필로로부터 요한이 로고스 개념을 끌어낸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이성(理性)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영지주의(Gnosticism)에서 로고스의 기원을 찾지만 이를 지지하는 이는 거의 없다. 유대지혜 문학에 근거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혜는 추상명사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도성인신 하시고 인격을 가지신 나사렛 예수다. 지혜는 영광이나 빛으로도 나타난다. 그러나 왜 지혜라는 말대신 로고스를 요한이 사용했을까. 지혜(Sophia)는 여성 명사지만 로고스는 남성명사로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dabar(말씀, word)은 유대교에서 지혜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말씀으로 해석한 요한의 로고스 개념과는 상관이 없다. 말씀(Logos)이 육신이 되신 인격을 가지신 예수님이 하나님을 완전히 로고스(말씀)로서 계시하셨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서울장신대석좌교수ㆍ서울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