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족사적 전통은 대체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일제 식민지 하에서 자연스럽게 싹이 튼 그것은 기독교의 막강한 지지를 받으면서 성장한 민족주의요, 다른 하나는 보편성과 세계적 연대를 근거로 심겨진 그러나 이것 역시 기독교의 영향 없이 성장할 수 없었던 민주주의의 훈련과 그 유산의 토착화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공통한 에너지 제공 내지는 그 각성 및 지탱의 받침대로써 한국교회는 일제 36년 동안 내적 결속과 반일(反日)애족의 신앙공동체로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에서 이 랑데부는 실상 클라이막스에 이르고 꽃을 피웠다. 절대 당위의 민족의 독립과 그런 정신이나 시세 판단에서 보여 준 기독교인들의 폭넓은 역사의식과 그 정신의 발표 및 세계적 공동체가 앞뒤에서 끌어 주고 밀어 주는 의식의 복합동기에서 성사된 것이다.
민족주의의 붕괴
해방이 되면서 이 조화가 깨져 나간 것이다. 거의 불가능했던 랑데부가 계속될 수 있었다는 가정도 했겠지만, 일본이 우리 민족의 압제자로서 신도(神道)라는 일본국가 종교정신으로 제정일체적(祭政一體的) 정치를 해왔고, 2차대전시 민주와 자유의 연합군과 대결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의 민족주의적 열망이 민주주의적 이상과 무리없이 연결될 수 있었지만, 이 양자의 결합은 언제인가 균열이 올 때 우리는 그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번민의 때가 올 것을 예견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비극의 체험은 해방 후 남북 분단에서 즉시 제기되었다. 일본 항복 직전인 8월 초 미국과 소련은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 군대가 남북한에 진주키로 최종합의를 보았고 그해 12월 미,영,소 외무장관들이 모스크바에 모여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공포했다. 이 신탁통치를 놓고 찬반 양 진영의 대립으로 국론이 갈렸다. 전쟁연합국인 미국과 소련이 조만간 이념 대결로 갈라서 냉전으로 돌입할 것을 예견한 이승만을 비롯한 민중들은 반탁운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한민당의 송진우같은 소수의 지도자들은 반탁에 회의적이고, 우익진영인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을 비롯한 남조선 노동당의 박헌영 등은 반탁에 앞장섰다. 자주독립을 갈망해 온 남북한의 민중들은 반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소련군정은 반탁운동을 철저히 탄압하므로 친탁으로 바뀌었고 남한의 남로당도 친탁으로 졸지에 표변하였다. 친탁 일색으로 변한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앞세워 북조선 공산정권을 수립해 갔다.
국제정 세에 누구보다도 밝았던 이승만은 1946년 미소의 냉전은 이미 시작되었고, 소련이 점령한 북한과 미국이 점령한 남한은 다시 합칠 수 없다는 현실을 투철히 인식했다. 북한엔 소련의 괴뢰정권인 공산주의 정부가 실질적으로 세워졌고 그들의 남한에 대한 공세가 격화되는 상황에서 그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방안이라는 결론에 이르러 이를 밝혔다. 백범 김구와 우사 김규식의 좌우 합작 세력이 아름다운 동행을 한 모습은 보기에도 좋았지만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안에 통일을 저해한다 하여 도전을 한 것은 역사적 과오로 남는다. 그때 이승만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요덕수용소의 죄수로 노역을 했을지 누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건국
이승만은 김일성 집단의 사주를 받은 좌익 세력들과 일부 민족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48. 5.10 남한만의 총선거를 치르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을 제정하고 그해 7.14에는 대통령 취임선서식을 하고 1948. 8.15 대한민국 건국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여 12.12에는 UN으로부터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음’으로써 국제적인 정통성을 확보한다. 1948. 7 제헌국회가 신생국가의 헌법을 제정하면서 국호를 결정할 때 신익희는 한국, 유진오는 조선민주공화국을 주장하다 한국, 한민당은 고려공화국, 김규식·여운형은 고려공화국, 결국 표결 끝에 대한민국안이 통과되었다. 1919년 3·1운동에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거나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려는 이들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제헌헌법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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