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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8
<순례자147> 관상기도(觀想祈禱)는 성경적 기도인가?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 이에게 우리는 주저함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 후 성도들의 많은 기도생활과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라 답한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는 카디쉬라는 짤막한 기도와 18번 축복기도라는 것이 있었다. 하루 세 번 드리는 기도로 유대인에게 가장 기본적 기도였다. 주후 66-70년까지 유대인전쟁을 기점으로 교회는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전쟁 직후 유대교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자로 규정하고 회당에서 축출했다. “배교자는 소망이 없게 하시고 … 나사렛 당원들과 이단자들은 빨리 망하게 하시고 …” 하는 저주의 기도가 18번 기도 중 12번째 드리는 기도에 있었다. 이때부터 18번 기도 대신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교회에서 공중기도로 드리게 된다. 세상의 모든 종교마다 그 나름대로 기도가 있고 그 형식이 있다. 외식하는 기도나 중언부언하는 기도, 자기중심적 기복적 기도, 무속적 기도, 이단적 기도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관상기도란 무엇인가?
관상이란 함께(con)와 기독교적 성소를 뜻하는 templum의 합성어인 contemplation이라 하는데 사물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성소에서 사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바라보는 것이라 한다. 사고에 의한 분석적인 하나님 경험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되는 하나님 임재 체험과 관련된 것을 말한다. 언어나 이미지를 사용치 않고 침묵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 품 안에서 쉬는 기도라 할 수 있다. 관상은 사람의 존재의 중심에서 알려지고 사랑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자각이다. 이런 뜻에서 관상은 목표이고 그에 이르도록 돕는 방법이 관상기도가 된다. 하나님을 깨달음에서 오는 기도를 하나님을 의식한 기도 또는 깨달음의 기도라고도 한다. 마음을 주께로 향한다 하여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관상기도자의 맨 밑에 있는 첫 번째 다리라고도 한다. 관상기도의 전통을 제시한 이들은 거의 모두가 동방교회나 천주교인들이다. 이들 다수가 신비주의자들로 그들은 계시가 지금까지도 계속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승구 신부, 김정순수녀 등이 관상기도를 널리 보급하고 있다. 개혁교회 중에서도 한신대 권○○ 교수, 장신대 유○○ 교수, 감신대 이○○ 교수, 고려수도원 박○○ 목사, 다일공동체 최○○ 목사, 더 이상 그 용어 사용을 하지 않으려 하는 지구촌교회 이○○원로목사등이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천주교와 개혁교회가 기도할 때 관상기도의 신학적 기초는 같다 할 수 있다. 다만 개혁교회에서는 마리아, 성현들, 형상 등을 사용치 않을 뿐이다.

관상기도의 문제점
관상기도 주장자들 스스로가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①일상적인 삶으로부터 분리되는 경향 ②지나친 금욕주의 ③반지성주의 경향 ④믿음의 공동체무시 경향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은 관상기도의 전통에 충실하면 극복될 수 있다고 반증한다. 그러나 뉴에이지 전통 속에 있다가 천주교로 개종한 마가렛 피스터는 관상기도가 전통적 천주교와 달리 뉴에이지적인 영성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했다. 이는 결국 자기체면이라고 비판한다. 관상기도는 아무 생각 없는 상태를 지향한다. 심지어 의식 너머의 상태에 이르고 거기 머무르는 것을 지향하는 비성경적이다. 이런 관상의 상태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아빌라의 테레사는 자신이 말하는 영적 진전의 마지막 단계를 ‘하나님과의 영적 결혼’이라 부르면서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이루시는 것이라 한다. 관상기도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도움이 합하여 정화, 주입, 합일의 단계에로 나아가는 반-펠라기우스적인 천주교적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관상기도는 종교개혁과 함께 잠적해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관상기도는 오직 성경만의 원리에 근거하여 신앙생활을 하려는 개혁교회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
우리는 참으로 성경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에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에만 의존하여 성령님의 감화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기도다. 관상기도의 주장자들이 제시한 성경 구절들(계1:7, 3:20, 시145:5, 19:14, 46:10, 116:9, 마5:8)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줘야 한다. 또한 어떤 것이든지 그 사상의 근원을 파악해야 한다. 유행따라 또는 존경하는 분의 가르침이니 자세히 살펴봄 없이 따라간다는 것은 위험한 신앙생활에 빠질 염려가 많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한국장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