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만 vs 15억의 대결장 홍콩을 향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997년 영국은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홍콩의 기존 체제를 유지하고 자치권을 50년간 보장하는 내용을 합의체결한 바 있다.
권위주의화 된 중국의 요구의 부당성
빈부격차,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풀기 위한 이익집단 간의 타협과 양보가 필요한 시기에 홍콩의 리더십이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진 상태에서 2017년에 치러질 행정장관 후보자 선출 방식을 놓고 홍콩반환 17주년이 되는 날 50만 명이 거리로 나와 직선제와 완전한 자치를 요구하는 소위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는 8월 31일 찬물을 끼얹으며 시위대 진압에 무력대응을 해왔다. 중국의 전인대는 “행정장관 후보자는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는 애국인사여야 한다”며 이들 2-3명의 후보자 중에서 “홍콩주민의 투표로 행정장관을 선출한다”고 결정했다. 반중국 성향의 후보자를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의도였다. 또한 선출된 후보자는 중국 정부의 임명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함으로 임명권이 중국 정부에 있음을 못박았다.
중국은 타이완과 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영국과 합의한 일국양제 원칙을 홍콩을 통해 원만하게 실험적으로 잘 시행했더라면 중국은 타이완과의 평화적 통일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홍콩을 중국식 권위주의로 억압하는 한 타이완과의 평화통일은 물 건너간 셈이다.
시위 지도자가 없는 시민혁명으로
홍콩 민주화 시위의 지도자가 분명치 않다. 러시아에서는 미국이 중국 체제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중국을 괴롭히려고 CIA를 동원해 조종하고 있다 하나 근거가 미흡하다. 일설에 의하면 17세의 죠수아 왕이라는 고등학생이 주동자로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반중데모대를 촉발시켰다고 한다. 이 학생이 15세때 공산당 찬양 교과서 지정을 중고학생 연합으로 반대를 해서 교과서 지정이 무산되었다 한다. 홍콩에 이같은 분명한 젊은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비교해 보면서 부럽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사실 이번 홍콩 사태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은 청년세대들이다. 그동안 사회에 무관심했던 신세대들이 청년실업, 경제 불평등, 계층상승 좌절에 실망하면서 노력해도 부모세대 만큼 잘 살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진 젊은이들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응집하게 된 것이다. 이들 신세대 운동권이 기성세대 민주파가 계획한 센트럴을 점령하고 행동으로 옮김으로 어느 정당이나 개인의 욕구가 아닌 민주화 시위의 규모와 방향이 활화산처럼 타오른 것이다.
국제적 지원이 쏟아지고
아직까지 인접 국가들의 공식적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경찰의 최루탄을 막기 위해 사용한 우산을 상징으로 한 소위 우산시위를 세계 도처에서 지지하고 나섰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21세기 글로벌시대에 사회주의 권위제도가 용납될리 없기 때문이다. 홍콩 시민들은 자신들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검은바탕에 노란리본으로 바꾸고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 세계 대학생들은 노란옷 입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미국 하버드 대학생들이 시작하여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었다. 미국의 하버드, 예일, 브라운, 시카고대 학생등 30여 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현재 참가하고 있다. 미국의 국무장관 존 케리는 중국의 외교장관과 홍콩시위를 놓고 정반대의 견해를 밝히면서 홍콩 시민의 보편적 참정권을 지지한다고 했다. 영국의 수상도 중국 반환시 약속한 것을 지켜 일국양제 원칙을 지킬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중국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우산혁명의 시위대가 홍콩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100만 명에 이르자 중국은 천안문사태와 같은 불상사나 티베트 위그르 같은 자치정부에 영향을 끼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의 현명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기다. 이 기회에 중국 정부가 민주화를 수용하고 G-2에 들어서는 계기를 만들든가 아니면 구소련의 전철을 밟는 파국으로 빠지는 두 길 중 한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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