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식은 학교, 가정, 사회를 통해 수 세기 동안 전달되어 왔다. 배움의 장소로서의 학교는 누가 제일 먼저 시작했을까? 학교는 희랍의 아테네에서 주전 387년에 프라토(Plato) 라는 사람에 의해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그의 선생 소크라테스(Socrates)처럼 학생을 공설운동장에서 모집하여 당시 체육인의 영웅 아카데미우스(Academus)의 이름을 따서 아카데미(Academy)를 개설했다. 후에 프라토는 이 아카데미를 자기 집 정원에 개설하였고, 후에 후계자 스페우니푸스(Speunippus)에게 자기 집을 물려줌으로 최초의 공적 배움의 집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는 프라토의 학교와는 다르다. 예수님은 당시 자신이 학교를 세우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예수님의 학교 학생들은 주님의 초청을 받았다.
1.내게로 오라는 초청을 받아야 한다
주님으로부터 받는 초청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이것은 제자에로의 부름이다. 이 초청은 나이, 국적, 성품, 교육배경, 재능과 상관없이 그리스도께 오라는 초청이다. 어떤 이들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해야 온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다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초청의 대상이 된다.
육신이 연약한 이, 삶이 고달픈 이, 특별히 여기서 말한 것은 율법 아래서 죄의 짐을 지고 구원의 주가 필요한 이를 말한다.
마태복음 11장의 내용은 분명하다. 유대인들에 의해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거절을 당하셨다. 예수님이 설교했으나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이 회개치 않았다. 이후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시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자신을 어린아이로 평가하는 사람, 어린아이처럼 순전하게 믿는 사람,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를 따르기 위해 자신을 포기한 사람, 자존심이 강하거나 자신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어린아이 라고 하셨다.
타산적이지 않고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도 없고 천국의 자녀가 될 수도 없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 진정한 의미로 거듭난 신자가 얼마나 될까?
눈에 보이는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 수 천 수 만 명의 교인 수, 천문학적 헌금액수, 잘 짜여진 조직과 원활하게 돌아가는 기구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할 수는 없다.
당신에게는 바른 신관과 바른 하나님 지식이 있는가?
세속적인 것과 구별된 성별된 삶이 있는가?
주님의 몸 되신 교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잃어버린 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는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말씀을 순종하고 있는가?
죄에 대해 민감하여 죄로부터 주님께로 돌이켰는가?
예수님의 초청을 받은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바르게 배우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거듭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자!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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