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성도들에게 치명적 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 되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제자 됨이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말을 많이 하고, 열심 있게 봉사도 하지만 실제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매우 빈약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우리는 이 같은 현실 앞에 새삼스럽게 놀랄 필요는 없다. 주님께서도 이미 이것을 아시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사실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감람산 설교에서 예수님은 결혼식장에 나타날 신랑을 기다리는 미련한 여인들을 중생치 못한 그리스도인들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바 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구원받지 못했다. 또한 예수님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사용하는데 실패한 한 남자가 주인에게 저주를 받고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울며 이를 갈았다는 말씀을 통해 거짓 신자를 비유로 말씀하셨다(마 25:30). 뿐만 아니라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지 않고,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고, 벗은 자를 입히지 않고, 병든 자를 돌보지 않고, 갇힌 자를 찾아보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 저들은 중생한 신자라 하니 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멸망할 자라고 말씀하셨다.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무엇이 부족한가?
1. 값비싼 은혜
제자 되지 않는 믿음, 순종 없는 은혜를 가르치는 신학, 예수를 생명의 주로 고백함이 없이 구주로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잘못된 신학들이 안개처럼 우리를 뒤덮고 있다. 십자가를 지 지 않고 제자가 되려 하는 것,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으면 안일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약속으로 미혹하는 번영 신학, 중생의 체험과 변화와 관계없이 출석교인 수만 증가시키려는 교회, 본 회퍼는 이런 신학을 싸구려 은혜라고 불렀다.
싸구려 은혜란,
‘회개를 요구함 없이 용서를 설교하거나, 교회 훈련 없이 세례를 베푸는 것, 고백 없는 성찬식, 개인적 고백 없이 용서를 선언하는 것’이다. 싸구려 은혜는 ‘제자 됨이 없는 은혜요, 십자가 없는 구속이며, 살아계시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없는 복이다’
반면 값비싼 은혜가 있다. 값비싼 은혜란 ‘밭에 감춰진 보화를 얻기 위해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기쁘게 파는 것,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한 이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는 것, 자기를 실족하게 하는 눈을 뽑아 버리는 것,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그물을 다 버리고 주님을 좇는 것’이다.
값비싼 은혜는 다시 찾고 또 찾아야 하는 복음이고 구해야 할 은사이며 두드려야 할 문이다.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부르는 것은 값비싼 은혜이다.
2. 주님을 따르는 것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제자 됨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번째 단계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며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보시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즉시 주님을 좇았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부르셨을 때도, 세리 마태를 부르셨을 때도 그들을 즉시 예수님을 좇으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이 예수님을 좇은 것은 단순히 육신만이 아니다 그들을 죄에서 떠나 구원의 길로 돌이킨 것이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를 부르실 때 ‘따르라’는 말 대신 ‘와서 보라’(요 1:39)고 하셨다. 베드로에게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말씀하신 후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이 모든 말씀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따르고 비싼 대가를 치루면서 좇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 되는 길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나를 따르라’는 말이 복음서에 13번 나타난다. 그밖에도 여러 차례 동의어로 표현된 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제자 됨은 크리스챤이 되는 첫 걸음이다.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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