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갔던 야곱은 객지에서 적잖게 고생은 했지만 대신 가정을 이루고 많은 자녀를 얻었으며 귀향을 시도할 만큼의 자신감과 용기를 갖춘 유목민의 족장이 되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귀향을 명령하셨습니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얍복강에 이르러 강 건너에서 형 에서가 20년 전의 원한을 갚기 위해 군사 400명을 준비하여 야곱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희망과 부푼 꿈을 가졌던 가나안의 새로운 삶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야곱과 그의 온 가족은 위기에 노출되었습니다.
1. 무능한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야곱은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던 중 강 건너에 에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얍복강 앞에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는 강 건너편의 에서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먼저 사절단을 보냈고 돌아온 이들은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 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6절)라고 야곱에게 보고합니다. 불안과 공포에 빠진 야곱은 한편으로 나름의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두려움에 빠진 겁니까? 먼저 그의 지난날의 과오로 인한 형의 분노가 무서웠을 것이고, 20년 만에 돌아온 그에게는 마땅히 그를 도와줄 다른 부족이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그를 더 두렵게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범죄자의 본능적 공포일 수도 있습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잠 28:1)는 말씀처럼 죄인들은 본능적으로 불안의 공포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의 신앙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실 때 자신에게 은혜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음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과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요단강을 건너갔던 그가 이제는 엄청난 가축을 거느린 족장이 되어 있음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불안에 빠져 있는 것은 위기 상황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무능한 모습만 생각하는 그의 신앙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자신의 보잘 것 없는 모습 때문에 불안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보잘 것 없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은혜 베푸심에 대하여 배워서 알고, 그 믿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문제에 부딪치면 두려움에 압도 당하고 믿음은 흔들리게 됩니다. 문제는 엄청나 보이고, 자신은 미약하고 왜소하게 느껴집니다. 반복되는 시련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마치 수렁에 빠진 느낌을 가지게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보잘것없는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입니다.
야곱에게는 씻지 못할 과거가 있고 교활하고 이기적인 많은 단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보잘것없는 사람과 함께 하셨고, 도우시고, 지키셨습니다. 우리 모두도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며 미련하고 부족하며 죄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 보잘것없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예수님은 이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죽으셨고, 성령님은 이런 나를 성전 삼으시고 내 안에 계십니다.
2.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야곱을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은 그 밤에 한 방문자를 만나게 됩니다.(24절) 그와 야곱은 밤을 새워 씨름을 했습니다. 날이 샐 때 그가 가려하자 야곱은 축복하기 전에는 보낼 수 없다며 그에게 매달립 니다. 야곱이 축복해 주시기를 간청할 때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말한 것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 분은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한 하나님이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씨름은 밤을 새운 야곱의 필사적 기도였습니다. 아마도 야곱은 강 건너편의 상황을 바꿔주시기를 간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십니다. 절대 절망의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질문은 ‘너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았으며 사람들에게 보여진 네 인격은 어떤 것이냐?’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발꿈치, 협잡꾼, 술수에 능한 자, 찬탈자 등의 이미지를 가진 뜻이었습니다. 야곱은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 밤 씨름에서 하나님은 한 순간에 야곱을 제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밤새 시간을 끄시며 야곱을 서서히 무너뜨리셨습니다. 교활하고 술수에 능한 삶을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만이 살길임을 다시 철저히 인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내면의 변화를 감지하셨 을 때 하나님은 ‘이제 네 이름은 이스라엘이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 하나님의 허락을 얻은 사람, 하나님의 보호 하에 있는 사람인, 새 사람 이스라엘이 된 야곱을 인 정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과거를 청산한 것처럼 우리도 속사람과 인격이 새로워진 새 피 조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도 이스라엘 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얍복강의 길고 고 통스러운 밤을 보낸 야곱의 앞길에 해가 돋게 하셨듯 새로운 이스라엘이 될 것을 결단하는 우 리 앞길에도 희망의 새날을 주실 것입니다.
3. 회개를 실천하는 야곱
길고 힘든 밤을 보낸 후 이스라엘이 된 야곱은 절뚝거리며 자기 길을 걷게 됩니다. 지난날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그는 이제 20년 된 마음의 숙제를 풀기 위해 에서를 찾아갑니다. 에서는 조금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더 이상 숨지 않았고 망설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하며 에서에게 다가갔습니다. 이 모습은 패전한 장수의 항복 선언과도 같아 보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이 보여준 교활함, 술수, 임기응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진정성, 겸손, 상대에 대한 존중의 모습이 그에게 보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야곱은 모든 인간관계를 일회용 거래처럼 생각하고 모든 사람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생각할 뿐 누구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형도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질주하듯 살면서 후회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모습에는 회개하고 변화된 사람의 진정성이 보였습니다. 사람을 존중히 여기고 상대 앞에 겸손할 줄 아는 변화된 야곱의 모습에 칼을 들고 기다리던 에서도 감동받았습니다. 야곱은 회개했고 에서는 용서했으며 두 사람은 화해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깊은 밤 얍복강에서 야곱이 재발견한 하나님의 참모 습을 보게 됩니다. 보잘것없는 인생, 죄와 허물투성이의 인생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회개를 기뻐하시고 회개하는 자들의 앞길에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 회개의 삶을 실천할 때 영광스런 삶이 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이즈음 우리는 하나님을 다시금 붙들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깊은 밤은 그치게 하시고 새 아침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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