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립보에 간 바울 일행이 전도 중에 점 치는 귀신들린 여종 한 사람을 고쳐준 일이 있었습니다. 여종이 귀신에게서 해방되자 그녀에게 점치는 능력이 사라졌고 여종의 주인들은 수입이 없어졌습니다. 화가 난 주인들은 바울 일행을 고소했고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니 옥문이 열리고 묶였던 손발이 다 풀렸습니다.(행 16장)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미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유를 선물하시고 그들은 다시 선교현장으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이해 못할 일들이 있을지라도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축복하시고 위로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 전 5:16-1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은 신앙의 근본입니다.
1. 갈라디아교회의 상황
바울이 갈라디아를 방문하고 교회를 설립하게 된 것에는 매우 의외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는 특정 도시를 의미하는 지명이 아니라 광범위한 행정구역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지역들과 2,3차 때에도 계속 방문했던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의 도시들이 갈라디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갈 4:13)고 한 말씀과 같이 바울은 질병 치료차 이곳을 방문했다가 전도를 한 것이었는데 뜻밖의 성과가 있어서 많은 교회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갈라디아교회라는 말은 갈라디아 지방의 여러 교회를 의미합니다.(갈 1:2) 갈라디아의 성도들은 바울을 열렬히 환영하고 사랑했습니다.(갈 4:14)
시간이 흐르면서 바울은 그 지방을 떠나 다른 지역을 선교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갈라디아 지역 여러 교회들이 거짓 교사들의 유혹을 받고 복음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갈라디아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의 침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소개하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비판 하고,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므로 정식 사도가 아니라면서 그의 사도권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이 틀린 것이라며 성도들을 유혹했습니다. 성경과 신앙에 대하여 깊은 지식이 없었던 갈라디아의 성도들은 심하게 흔들렸고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는 등 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심하게 충격을 받았고 분노하고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격한 마음으로 갈라디아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한순간에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며 돌아선 그들의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끼며 절망했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이런 일을 당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했고, 죽을 만큼 고생도 했고, 마음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실망, 분노, 배신감, 인생에 대한 회의뿐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빠질수록 감정에 사로잡혀 사람을 미워하고, 폭력적 대응을 하고, 자기 내면을 분노와 격한 감정으로 황폐하게 할 것이 아니라 차분한 자기 관리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시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위기관리 처방들
바울은 본문에서 진정한 위기 극복의 처방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실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6-7절)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 말씀은 심는 자만 거둘 것이 있다 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현실이 실망스럽고 일생의 노력이 실패의 위기에 봉착할 때에도 실망하지 않고 씨를 뿌리는 자만이 새로운 열매를 거두는 법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갈라디아 교회들의 상황 때문에 실망과 분노로 상처 입은 영혼이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복음의 씨앗을 심을 것이다’라 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현실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실망스럽다 하여 현실 을 버려서도 안 됩니다.
둘째 가치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 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 생을 거두리라”(8절). 실망하고 분노하는 일은 대부분 부질없는 세상의 영광과 이익을 탐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4-25). 모세가 믿음으로 생각했더니 고난이 더 유익한 일이 되었고, 더 영광스러운 것이 되었으며 그렇게 광야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발견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를 위하여 심지 않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가치관의 중심축이 세상과 육체의 유익을 위한 것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이동되면 땅이 꺼지듯 실망할 이유도 없어지고 화산이 터지듯 분노할 일도 없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면 감사할 뿐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으면 그 또한 죄인인 우리에게는 과분한 영광일 뿐입 니다.
셋째 영원한 희망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9절). 그리 스도인은 영원한 희망의 사람입니다. 열왕기하 1장은 아합 왕이 죽었다 는 말로 시작됩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평생토록 괴롭게 한 사람이었고, 이 스라엘에 바알 숭배가 만연케 만든 사람이었고, 수많은 선지자들을 칼로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이 죽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은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아합의 아들들은 아비 못지않았습니다. 이때는 길 가던 아이들도 선지자를 조롱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는 굴복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기 갈 길을 담담히 걸어가면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위기의 민초들 곁으로 돌아가 버려진 자들을 품고 사랑하고 치유하고 축복하면서 희망의 불씨를 끄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살아계신다,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증거하며 백성들 을 격려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의 일로 실망하고 분노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마음도 편치 못합니다. 상황의 어려움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그보다 더 위태로운 것은 분노와 불편한 마음과 실망하는 우리의 영적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성령님의 도우심을 겸허하고 간절하게 간구해야 합니다.
위기와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세상살이는 여전히 불편하고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 삶을 기쁨 가운데 있게 하시고 마침내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하실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합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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