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진리임을 말씀해 주시고, 우리에게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비추어 주시며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해주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께 갈 수도 없고 하나님의 진리도 없다. 히브리서 10장 20절을 보면 예수님이 새롭고 산길을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순간에 인간 세상과 지성소 사이에 가로 놓였던 휘장이 완전히 찢어졌다는 말씀dl다. 이것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 인생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들어가게 된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10절 이하에서 세 가지 종류의 인간들에게 도전을 하고 있다.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라고 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도덕주의자들에 대한 도전이다. 도덕주의자들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이 살고 완전해지면 혹시 구원을 얻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때때로 우리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맹랑한 말이다. 또 깨닫는 자도 없다는 말은 이성주의자들과 논리주의자들에 대한 도전이다. 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가 깨닫고 터득한 진리를 가지고 마치 신을 찾은양 떠들고 다니지만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인가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말은 무슨 말인가. 그것은 종교인들에 대한 도전이다.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도덕주의자들, 논리주의자들, 종교가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지만 끝내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겠거니와 그 가까이에 갈 수도 없다.
구약성경은 말씀하기를 이것은 우리들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범한 죄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담이 세워졌고 그 담을 넘을 수가 없어서 하나님 앞에 갈 수고 없고 만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이 문제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지가에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모두 소멸하시고 죄를 옮겨 놓으신 것이다.
문제는 누가 그 사살을 믿느냐 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을 만나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어찌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가? 그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 길을 터주시고 하늘가는 밝은 길을 열어주시고, 그 자신이 문이 되어 주셨는데 그 문을 믿지 못하기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루는 일을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룰 수가 없다.
결 론
구원에 이르는 문이 좁다고 한 까닭은 많은 사람들이 그 문을 믿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불 뱀에 물려서 죽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쳐다보게 했는데 그것을 쳐다보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 장대에 달린 구리 뱀을 한 번 쳐다보면 될 텐데 “그것을 쳐다본다고 나을까?”하는 불신감으로 결국 죽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악한 마음이다. 예수를 믿으면 살고, 천당 간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믿으라고 하면 더 믿지를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향한 문은 좁은 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문이다. 또 그 길을 따라가면 자기 욕심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찾지 않는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마다 하나님 앞에서 좁은 문을 통과하여 영원한 천국에 놀라운 축복에 참여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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