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창세기 45:1~15
요셉의 일생을 보면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항상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과거의 고난도, 현재의 모든 것도, 그리고 미래의 일들까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을 가지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오늘, 요셉의 일생을 통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제일 원인이 되시며 개인과 가정, 민족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고 우주만물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만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역경과 고난과 슬픔과 고통의 순간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악의 근원이 되신다거나 우리에게 악을 행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루실 수 있는 전능의 하나님께서 악을 이기지 못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을 파는 형들의 악행을 묵과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악과 악한 행위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으로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우리 주변의 모든 일에 대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분도 아니십니다.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활동까지도 제약을 가하시며 악의 범위를 한하십니다.(욥1:12) 요셉은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자기를 판 형들을 용서하고 오히려 도움을 베풀며 사랑으로 품을 수 있었습니다.(8절)
청년 요셉에게 계속된 고난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십니다.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 것, 음탕한 보디발 부인에 의한 유혹적인 상황 ,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것 등 요셉에게 일어난 사건자체는 분명 악하고 억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셉의 일생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심지어 악한 것도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날들을 나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수단의 날들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 당함이 유익이라고 고백했습니다.(시119:67)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결국 요셉 까닭에 그의 가족과 민족에게도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의인을 구원하시고 복 주시기 위해 의인 주변에 있는 생명까지도 구하시므로(5절) 다른 사람도 그 선한 사역의 혜택을 누립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책임을 추궁하였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 주변에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진정으로 기도한 적이 있는가를 자문해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고 하시는 높으신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요셉의 일생을 통해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하나님…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나타내 주십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먼저 부르던 요셉처럼 하나님께서도 악도, 선도 다스리시며 절대주권을 가지시고 개인의 삶도, 역사도, 우주도 운행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요셉 까닭에 그 주변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누렸던 것처럼 우리 개인과 가정이 복의 기관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