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다산 정약용 전을 열었습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은 유품은 하피첩(霞?帖)이었습니다.
10년간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 간 남편에게 아내 홍씨는 그리운 마음을 담아 혼례 때 입었던 5폭 붉은 치마, 그러나 이제는 다 낡고 빛바랜 치마를 보내왔습니다.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보내 왔네
천리 먼 길 애틋한 정을 전해왔네
흘러간 세월에 붉은빛은 이미 바래
늘그막에 드는 마음 서글픔 가눌 수 없구나
마름질로 작은 서첩을 만들어
자식들 일깨우는 글귀를 적었다
부디, 어버이 마음을 잘 헤아려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려무나"
정약용은 이 치마를 자르고 글을 써 두 아들에게 줄 책을 만듭니다.
"나는 아내의 활옷을 자르고 작은 첩자 하나를 만들고 붓끝이 가는 대로 훈계하는 글을 써서 두 아들(정학연, 정학우)에게 전해주었다. 훗날 그들은 내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양친 부모의 손때 묻은 자취를 보면 그리운 마음이 뭉클할 것이 아닌가"
정약용은 이 하피첩 제작 이유를 위와 같이 밝혔습니다. 또한 결혼 한 딸에게는 하피첩을 만들고 남은 아내의 해진 치마를 화폭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매화가지 위에 두 마리의 새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다정스럽게 앉아 있는 그림을 그려 보냅니다.
정약용은 6남 3녀를 두었으나 4남 2녀가 3세 전에 죽고 자신은 멀리 귀양 온 상태에서 홀로 아이들의 죽음과 자녀양육에 고생하는 아내와 아버지 없이 크는 자녀들에게 교훈과 훈육의 글을 보내 부정과 못 다 준 사랑을 표현하였습니다.
하피첩을 통해 다산은 자식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특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란 의미로 효도를 뜻하는 ‘孝’자와 우애를 뜻하는 ‘弟’자 옆에는 붉은색 동그라미까지 표시하였습니다. 다산은 그 힘든 상황에서도 자녀들에게 마음을 크게 쓰고 긍정적 사고로 당당하게 살라는 참으로 깊은 아버지의 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요즘 아버지들은 젊어서는 돈을 버느라 시간에 쫓겼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과의 대화 단절로 왕따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무관심이 자녀교육에 도움이 된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고 합니다. 자녀들을 주의 말씀으로 양육하라고 부모에게 명령하십니다.
또한 자녀들에게는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효를 가르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사를 거부하는 기독교가 불효의 종교라고 하지만 기독교는 이렇게 효의 종교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변하고 세대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영원히 간직해야 할 가치들이 있습니다.
2018년 이 봄, 정약용의 하피첩이 새삼스럽게 기억됩니다.
유은경 집사(순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