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월)
서로 덮어줍시다(창 9:18-29)
이정환 목사
신앙의 연륜이 들수록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땅의 것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왜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습니까? 이 세상의 죄악이 관영함과 사람들의 모든 계획과 생각이 악함을 보셨기 때문입니다.(창6장) 우리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노아가 당대의 의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노아는 의인이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을까요? 노아가 120년 동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방주를 만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 행위로는 절대로 방주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의 은혜로 방주 안에 들어갔으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셨고, 그래서 그들은 의인이 되었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그의 아들에 대해서 노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저들의 죄를 이토록 덮어주셨는데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지 아니하고 함은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의 사명감은 나를 구원해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은혜로, 진정 거듭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사명감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죄를 가려주신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쉽게 드러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수치를 배가시키는 함의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고통과 아픔을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덮어주고 가려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죄를 가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로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가려주신 은혜를 감사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죄를 가려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1월 20일 (화)
내가 깨어져야 합니다(고후 2:14-17)
이정환 목사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도 향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향기를 맡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마땅히 우리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요즈음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괴롭고 여러가지 난관이 많을지라도 정말로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고, 주님이 계신다면 우리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이러므로 너희 착한 빛을 사람들에게 비쳐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하실 때 17번이나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실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이 먼저 하나님께 드려진바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전도하기 위해서 성경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경 이야기보다는 먼저 전도하는 사람의 삶을 봅니다.
오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손가락질 받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면 이 향기가 담장을 넘어 이웃에 아름다운 냄새로 전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며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옥합을 깨뜨려 그 안에 있는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엄청나게 비싼 향유를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예수님께 부은 이 여인은 죄인이었던 자신을 구원 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므로 가장 소중한 향유를 예수님께 아낌없이 부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여인이 나를 사랑함이 너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수고는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은 사랑의 수고입니다. 바울 사도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사랑의 수고를 칭찬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붓기 위해 옥합을 깨뜨린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
내가 죽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깨어지고 죽었다고 하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 것입니다.
11월 21일 (수)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눅 14:25-27)
이정환 목사
세상의 어떤 힘도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를 향해서 싸움을 거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부모 형제는 물론이요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26절)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강조하신 것은 사랑입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형제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제일 먼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에 주님은 비로소 “너는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몹시 책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더 큰 것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모와 형제와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모와 형제와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가족과 자녀 하나님께 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요즘 교인들은 교회가 편할 때는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조금만 어려움에 처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회를 떠납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성도의 자세일까요?
서울교회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성도들이 많아야 합니다. 오늘 이 교회를 위해서 내가 져야 할 가장 중요한 십자가는 기도의 십자가입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교회 문제는 사람이 절대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교회 문제는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해결하실 수 있으니 성도 여러분은교회 회복을 위해 모두 기도의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11월 22일(목)
하나님의 자녀(요 1:12-13)
김동호 목사
저는 2001년 10월 나이 50세가 넘어 「높은뜻숭의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개척할 당시 저에게는 좋은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받은 복 중 최고의 복은 좋은 교회를 만난 것입니다. 거기서 좋은 목사님과 장로님을 만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좋은 믿음의 친구들을 만난 것이 평생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를 목사로 만나는 교인이 그 복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교회 라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좋은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오랫동안 고민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16:13-20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높은뜻숭의교회」를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직접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시되 신앙고백 위에 세우십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원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죄, 곧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죄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개척하며 2년 동안 직분을 임명하지 않고 예배만 드렸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직 예배를 통해 교인들이 은혜만 받기 원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가 6년에 한 번씩 투표를 받아야 합니다. 투표 받고 재신임을 받지 못하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이 또한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사탄은 충성하는 사람을 노립니다. 충성은 수고를 하게하고 교회에 애착을 가지다가 나중엔 그 충성이 주인 됨으로 바뀝니다.
「높은뜻숭의교회」는 2009년 1월에 4개의 교회로 분립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60세가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게 한 교회는 맡기실 줄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이 없어진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서울교회가 지금 분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잘해결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분쟁이 해결됐다고 해서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분쟁이 끝난 후에서울교회가 정말 하나님만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되어야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서울교회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제대로 되면, 다시 말해서 오직 하나님만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되면 힘이 생길 것입니다. 이 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되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아버지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열쇠는 자녀의 권세입니다. 지금 서울교회에 필요한 것은 자녀의 권세입니다. 그 어떤 분쟁도 사람의 힘으로 풀 수 없습니다. 천국의 열쇠가 있다면 열리지 않는 문이 없을 것입니다.
서울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싸우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믿음에 대해서, 은혜 받는 일에 대해서 몰두 하고 그 힘으로 승리하는 서울교회 교우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11월 23일(금)
주님의 제자(눅 5:1-11)
김동호 목사
우리가 여기에 사명자대회로 모였는데 사명자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기를 간구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은사와 달란트를, 또 권세와 권능과 재능을 축복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십니까? 사람은 외모를 보고 사람을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쓰십니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쓰는 사람과 중심을 보시고 쓰시는 하나님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무나 사람을 쓰시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는 뽑아 쓰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어떤 면을 보시고 쓰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일 먼저 그의 충성심을 눈여겨보셨습니다. 사람의 외모를 취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무능력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어부가 직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밤새 그물을 내리고도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서도 밤새 그물을 내리고 있는 베드로의 성실함과 끈질김을 보셨습니다.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은 겸손이었습니다. 사람이 충성하기는 쉬워도 겸손하기는 쉽지 않은 법입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고 주인 노릇 하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비록 자기 직업이 어부였지만 두말도 하지 않고 그물을 깊은 데로 가지고 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고집을 꺾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바로 이런 모습, 곧 충성하면서 고집부리지 않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공신이 역적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의 역적은 다 공신 출신입니다. 사실 공신이 아니면 역적이 될 발판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울교회가 주의해야 할 것은 교회의 어려움이 해결된 후의 일입니다.
어쩌면 회복된 후에 교회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조직이나 교회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시고 충성하십시요. 그러나 교회가 회복되고 나면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가 되었을 때 누구든지 자기 주장을 하거나 주인 노릇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주를 위하여 쓸 줄 아는 사람을 쓰십니다. 베드로는 처음에 예수님을 랍비로 칭하다가 나중에 주로 칭합니다. 주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에게 올인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자가 할 일입니다.
충성하는 사람, 고집부리지 않는 사람, 주를 위해 쓸 줄 아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사명자입니다. 이러한 사명자 때문에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될 것이며 여러분과 여러분 자자손손은 하나님 앞에서 은사와 재능과 권세와 권능을 받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정리 허 숙 권사(편집부)
** 사명자대회 특별새벽기도회 6일째 말씀은 다음 주에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