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월)
고난 당하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
(사 53:4-6)
1. 인류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을 겪었던 인물을 보면 구약에서는 욥을 고난의 대명사라고 말할 수 있고, 신약에서는 복음과 진리 때문에 고난을 받으며 순교한 사도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편 국가로는 이스라엘만큼 고난을 당한 민족은 또 다시 없을 것입니다. 고난은 대부분 죄와 관련하여 말할 수 있지만 욥처럼 세상적인 판단과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 역시 모든 인간이 죄와 연관이 있음과는 맥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죄인이 아닌 인간으로서, 또 완전한 신으로서 우리 인간 대신 고난을 받으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2.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3:4-5를 통해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면서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하지 말라시는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로 인해 모든 인생이 죄 가운데 출생되어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게 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셔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대제사장이시며, 거룩하고 죄가 없으시며, 흠이 없고 죄인들과 구별되는, 하늘보다 높은 곳에 계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히 7:26-27)
3. 하나님의 어린 양의 고난과 죽음이 가져온 복락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댓가로 우리는 평화와 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복락은 평강을 누리는 것이며 회복되어지는 은총을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57:21)고 말씀합니다. 인간이 곤고와 흑암의 고통과 사망의 쇠사슬에 매여 있음에서 해방된 것도 모든 능력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 서울교회가 겪고 있는 이 아픔을 통해서 더욱 강해진 하나님의 용사들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존하고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는 쇠하여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흥해지는 그 같은 역사를 이루시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끊임없는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김으로, 사흘 만에 죽음에서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만을 붙들고, 더 이상 고통도 분쟁도 아픔도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소망을 붙들고 인내함으로 승리를 쟁취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6월 18일(화)
너희를 미워하면 나를 미워한 줄 알라
(요 15:18~20)
1. 세상은 왜 성도를 미워하나
예수님은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함은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15:19).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일은 불행일까요? 축복일까요? 당연히 축복이지만 현실에서는 불행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야고보 사도는 ‘만일 세상과 벗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약 4:4).
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미워하는 곳이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비성경적인 불필요한 처신을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와 우리들이 세상을 잘 섬기는 최선의 길은 첫째로 교회가 교회로써의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하나님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요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과 타협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잘 섬기는 유일한 길은 우리 스스로가 철저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택함을 받음은 최고의 행복자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자는 불행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는 최고의 행복자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을만한 자질이나, 그에 합당한 공로는 전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주셨고, 구하는 것마다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 모든 것을 다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았습니다(롬 8:17).
3.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세상에서 그 누가 하나님과 같은 인도하심, 보호하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겠습니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도 나를 떠나고, 때로는 아내도, 남편도, 그리고 자식까지도 나를 떠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언제나 동행해 주시므로 우리의 찬양이 되고 계십니다(시 27:1-2).
원수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 우리는 다윗처럼 “우리를 핍박하는 악인들을 스올에 빠뜨리시므로 잠잠하게 하소서,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고 고백하고 다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월 19일(수)
현재의 고난과 장차 나타날 영광
(롬 8:17~25)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은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한 것과 같이 고난과 핍박이 없는 그리스도인을 결코 성도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느 청교도 성직자가 “천국에 온 성도들의 얼굴에는 마귀가 할퀴고 간 상처 자국이 너무도 많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진정한 성도라면 그 누구라도 아픈 고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성도가 고난의 현장에서 위로 받을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1. 고난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한 필수 과정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나? 왜 우리교회가 이같은 아픔을 겪어야 하나?"라는 질문보다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으므로 장차 도래될 영광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누리시는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 분이 겪으신 고난에도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롬 8:17). 실제로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2. 고난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께서 고난의 현장에 함께 계신다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들이기 때문에 핍박과 시련을 받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특히 초대교회의 성도들 모두는 믿음의 삶을 살다가 극심한 고통과 환난을 당하였지만 그들은 자신들만 이 같은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난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여전히 함께 하심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이것은 핍박받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고난의 아픔만 생각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고 계심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갖게 되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3. 장차 누릴 영광을 깊이 생각하라
환란을 이길 가장 큰 비결 중 또 한 가지는 장차 누릴 영광을 깊게 묵상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하면서,“여러분의 마음을 밝혀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해 두신 것을 깨닫도록 하시며,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지 깨닫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 합니다(엡 1:18).
지금 아픔 가운데 있는 서울교회가 이 아픔을 다 딛고 일어섰을 때 하나님께서 주실 승리의 면류관을 소망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잠잠히 기다리시는 서울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6월 20일(목)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시는 하나님
(고후 1:3-11)
성도는 모든 환난에 노출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환난 가운데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교회가 있고 진리가 있는 곳에 핍박과 고통이 동반되었고, 그 진리를 위해서 일하는 자들에게는 억울한 아픔들을 겪는 일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 그 징계가 우리로 하여금 수치와 낭패를 겪게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없게 함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살리시사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 참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1. 자비와 위로의 하나님 아버지
성도는 모든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자비와 위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표현할 때 그냥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자비의 아버지’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고후 1:3). 가장 고통스러운 곳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격려해 주시고 모든 순간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녀들의 원한을 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눅 18:1, 7).
2. 위로로 그치지 않고 능히 건져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 가운데 위로하실 뿐 아니라 능히 건져주십니다. 우리는 고난이 넘칠수록 은혜도 넘치게 됨을 믿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고후 1:8-9). 사도 바울이 당한 환난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 같은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까? 이것은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기막힌 환난 가운데 있는 서울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고 바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서울교회에 넘치는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넘치는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넘치는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인내하시면서 환난 중에 있는 자를 능히 건지시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시는 서울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6월 21일(금)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29)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골로새서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며 “나는 너희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말씀합니다. 교회를 다니면 즐겁고, 형통하고 만족해야 되는데 우리는 왜 괴롭고 힘이 듭니까? 이 괴로움은 우리가 사도 바울의 삶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일이 아닌,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은 우리가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신부인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하기도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괴로움을 견디는 것은 성령이 주는 마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데 오는 고통과 괴로움을 기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말씀하시면서 기뻐하되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할 때 어떠한 여건과 환경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1. 성도가 기뻐해야 할 이유
성도가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해야 할 이유는 고난이 넘치면 위로도 넘치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고후 7:4). 성도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에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당한 고난의 흔적은 곧 예수의 흔적입니다.
2.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사도 바울은 교회 때문에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가 남기신 고난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은 영광스러운 것이며 성도는 기꺼이 이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여기서 ‘채우노라’ 계속 진행형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의 남기신 고난을 계속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주님의 발자취를 좇아갈 때 부활의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벧전 2:12, 빌 3:10).
성도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지 않으면 십자가의 원수가 됩니다. 이 고난을 감당하는 일은 성도에게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고 주님의 교회를 견고히 세웁니다. 이 환난은 결코 부끄럽지 않은 것이며 오히려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교회의 분열은 어떤 면에서 교회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분열을 통해 성장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손해도 감당하고 억울함도 감당하고 누명 쓰는 일에도 담대하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세움을 받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하시는 서울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녹취 : 윤명구 집사 정리 : 허 숙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