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쫓겨 다니는 사람은 오직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에만 만족감을 느낀다.
- 쫓겨 다니는 사람은 성취를 나타내는 상징을 과시하는데 재빠르다.
- 쫓겨 다니는 사람은 보통 통제되지 않는 확대욕구(욕구/욕망의 확대)에 사로잡혀 있다.
- 쫓겨 다니는 사람은 온전한 인격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다.
- 쫓겨 다니는 사람은 사람을 조종하거나 위협하는 능력이 아닌 한, 대인관계 기술이 풍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쫓겨 다니는 사람은 보통 경쟁심이 강하다. 그들은 모든 일을 승과 패를 가르는 게임으로 본다.
- 쫓겨 다니는 사람은 화산처럼 격렬한 분노를 품고 있다. 그래서 반대로 불 충성을 감지할 경우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
- 쫓겨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바쁜 것을 자랑한다. 그들은 노는 법을 잊어버렸다. 영적활동도 시간 낭비로 보인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왕 사울만큼 “
쫓겨 다니는 인생의 전형”을 잘 보여 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바쁜 사람으로
세상을 정복해야 할 대상(성취, 경쟁심)으로 보았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임박했을 때, 제사를 드리러 올 선지자 사무엘을 기다리다가 그가 제 시간에 오지 않자 안달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풀려 나가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는 일을 진행시켜야만 했다. 그가 택한 해결책은
희생 제사를 자신이 직접 드리는 것(욕구확대)이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크게 파기했다.(관계 취약)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은 사무엘과 같은 선지자의 책무이지 사울 같은 왕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을 몹시 중요한 인물로 여긴 나머지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성경에는 사울의
분노가 폭발하는 장면(분노)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는 그로 인하여
난폭한 행동을 하고 나서는 곧 비통한 자기 연민에 빠지곤 했다. 말년에는 원수를 찾느라 온 숲속을 뒤지며
자제력을 상실한 인간이 되었다.
왜 사울은 이렇게 되었을까?
그는 애초부터 쫓겨 다니는 사람이었고, 단 한 번도 자신의 내면세계를 가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수많은 사울들, 즉 재산을 쌓으면서 인정받고, 성취하기 위해 쫓겨 다니다가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 존재한다.
→ 우리는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 세속적인 가치의 영향을 받으며 “
쫓겨 다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성경적 가치를 지닌 자로서, “
그리스도 예수를 좇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우리 삶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좇아가는 삶을 살아가자!
→ 기 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가치와 세속적인 흐름에 쫓겨 다니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좇아가는 믿음의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성경통독: (통독 본문 기록)
※ 주어진 “사명자대회 기도문”을 읽고 기도드립니다.
성삼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옵나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어,
우리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① 초대 교회와 같이 함께 배우고, 사랑하며, 예배드리고, 전도하는 교회로 재건되게 하옵소서.
② 주님께 돌아오는
능력의 역사, 사랑으로 섬기는
사랑의 역사, 진정한 회개가 있는
통회의 역사, 신앙이 머리에서 생활로, 교회에서 가정으로, 나에게서 이웃으로 퍼져나가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③ 말씀과 기도와 봉사가 더 깊은 단계로 성장하게 하옵소서.
④ 피동에서 능동으로, 받음에서 섬김으로,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삶의 방향이 새롭게 변화되게 하옵소서.
⑤ 사랑과 인내와 소망, 신행일치(信行一致)의 모범적 삶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목회를 감당 할 신실한 담임목회자를 찾아 보내주옵소서
⑥ 국가와 교회와 가정을 세워주신 주님께서 저희를 보호해 주시고, 다스려주시며, 인도해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