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월)
사울 왕국에서 다윗 왕국으로
(삼상 15:22-23, 26-30)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임재에 확신이 옵니다.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성령이 오시면 내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이 오시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든 권세와 능력은 예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주님은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능력, 곧 성령이 오시면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자연인 스스로는 불가능한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가신 예수님은 교회를 향하여 복음을 들고 모든 민족에게로 갈것을 명령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첨병으로 세운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이 땅에 교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구약에서 발견되는 가장 이상적인 그리스도 왕국의 예표는 다윗 왕국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에는 사울 왕국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국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와는 거리가 먼 왕국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위조된 하나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사울은 사람들이 택한 자였습니다.
사울도 처음엔 겸손한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겸손은 진정한 겸손이 아니고 교만 섞인 불안과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사울 성향이라고 합니다. 교회 역사상 일어났던 수많은 위대한 운동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안에 사울 성향이 생기게 됩니다. 엘리트 의식이 생기고, 배타주의가 생기고, 교만해져서 결국은 바리새적으로 변질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인 것입니다. 교회사에서의 거의 모든 운동들이 불꽃이 사라지고 나면 사울의 집이 되고 맙니다. 사울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어 사울의 집을 만들어냈고, 그 안에서 종교의 영들이 움직여 강력한 운동력으로 위조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면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면에서 내면의 주된 관심면에서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찾은 사람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 눈치를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원하되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도움이 될 때까지만 원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일에 온전한 관심을 쏟았습니다. 사울은 두루 다니며 유능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완성시키고, 자신의 명성을 높이는 일에 유용한 존재만 찾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억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다윗은 진정한 아비의 마음으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능력과 은사와 사역을 개발해 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사울의 경향을 버리고 다윗처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한 자이고, 다윗은 순종한 자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은 그 분에게 순종하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울의 성향은 다 털어내고 다윗의 성향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찾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월 19일(화)
마태의 소명
(마 9:9-10)
하나님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택하여 부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오래 전에 온 세상이 가인의 길로 치달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무리 가운데 한 사람 노아를 불러내셨습니다. 노아의 자손들이 바벨탑 사건으로 온 세상으로 흩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의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시대마다 당신의 종들을 부르시고 위대한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며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1. 부르심의 상황-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감사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잘 알고 계신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섭리 하에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2. 부르심의 은혜-예수 당시 세리는 욕된 직업이었습니다. 세리는 종교적으로도 배척을 받던 사람들로 성전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마태를 부르신 것은 오직 은혜였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면 절대로 신앙이 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3. 부르신 분-마태의 소명은 마태를 완전히 알고 계신 예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에게서 예수님 제자로서의 마태를 보신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끝없는 지혜로 각자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주님의 제자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워 나가십니다.
4. 부르신 내용-주님의 부르심은 “나를 따르라”는 매우 심플한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게 말씀하시는 개별적 명령입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을 삶의 경배자와 인도자로 확실하게 영접하는 것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모방하고 답습하는 것이고, 주님과 공동운명체가 되어 영광과 고난까지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5. 부르심의 효력-예수님의 부르심은 즉시 효력을 발휘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마태의 삶에 놀라운 효력을 발휘하여 초대교회의 초석이 되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6. 부르심의 열매-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마태로 인해 많은 죄인들이 예수께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의 문이 되었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신다면 즉시 일어나 따르십시오. 한국교회가 주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였다면 오늘 이 나라와 한국교회는 지금과 같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도 '나로 인해 한국교회로 인해 이 땅의 문이 활짝 열리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1월 20일(수)
성령님과 하나님의 나라
(행 1:3-8, 엡 3:16-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아직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자칫 이 약속의 엄청난 경이로움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의 내용은 우리에게 가장 불가능하고 가장 환상적인 기대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짐은 우리들의 지·정·의 모든 것이 하나님 성령의 손에 잡히므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마음 속의 뿌리까지 완전히 바뀌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
이 사역을 위해 예수님은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었지만, 교회는 이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성령님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홀대해 왔고, 무관심하거나 배척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하나님 나라 확장 사역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오늘도 변함없이 ‘성령세례를 받고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령세례 사역은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승천하시고 난 후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시
고, 사마리아와 에베소에 역사하시며, 곳곳마다 기독교의 역사에 엄청나게 많은 성령의 부으심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1. 성령 세례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에게 주시는 필수적인 선물이다.
성령 세례에 대한 약속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은 주님의 승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함께 모여 열흘 동안이나 기도해 오던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습니다(행 : 1-4). 그들은 예수님께서 뽑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은 그들은 예루살렘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2. 성령의 부으심은 제자들에게 권능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하나님 나라를 온 세상에 확장시켜 땅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일에는 엄청난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초대교회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능력으로 이 일을 행하도록 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교회에 성령님을 보내고 계십니다.
3.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충만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위해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충만(플레로마)에 이르도록 간구했습니다(엡 3:16). 사도 바울은 우리 개인이나 교회가 ‘하나님께 내재해 있는 충만’이라는 목표지점에 이르기까지 충만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합니다(엡 3:16-19). 교회는 본래 성령님에 의해 예수님의 모든 충만으로 말미암아 충만해진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주님의 강력한 간섭이 나타납니다. 서울교회도 이와 같이 예수님의 지혜와 지식, 사랑으로 충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데까지 자라나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불처럼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월 21일(목)
최대 계명과 지상 명령
(마 22:37-40, 28:19-20)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부르시어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과 함께 영광도 받고, 주님과 함께 고난도 받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의 최대 계명과 주님의 지상 명령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1.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라 (예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원어 성경을 보면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보다는 사랑하라는 음성이 먼저 들려옵니다. 즉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다음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라는 방법론이 나옵니다.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묘사하는 단어는 ‘예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한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주는 부분으로서 신명기 6:5의 인용입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의 전 인격을 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2.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복지, 봉사, 구제)
“둘째도 그와 같으니”(마 22:39)는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의 성질이 동일함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과 같이 ‘사랑하라’는 메시지로 압축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에 주신 이 사명을 묘사하는 단어는 ‘봉사(사역, ministry)'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교회의 봉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3. 가서 제자 삼으라 (전도)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목격한 제자들이 할 일은 주님과 주님의 구원 은혜를 만방에 전파하는 일입니다. 전도 명령은 너무 중요하여,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다섯 번씩이나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전도와 관련된 일 외에는 주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설 때 자랑할 수 있고,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전파 뿐입니다.
4. 세례를 베풀라 (교제)
세례는 계속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세례를 베풀다는 ‘담그다’와 ‘씻다’의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담그다’는 의미로 볼 때 세례 의식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하심에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가 강조되고, ‘씻다’는 ‘죄씻음’ 또는 ‘죄사함’이란 의미가 강조됩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죄씻음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또한 교제를 상징합니다. 세례는 구원의 증표일 뿐 아니라 교제의 상징입니다.
5. 가르쳐 지키게 하라 (양육)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명한 모든 것들을 계속해서 지키도록 하여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 목적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단어는 제자도, 또는 양육입니다. 양육이란 신자가 그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행동에 있어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도록 도와주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성도는 거듭난 이후 남은 생애동안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초대교회는 가르쳤고, 함께 교제했으며, 예배했고, 봉사했고,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이 목표는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교훈과 삶의 모범을 잘 가르쳐 지키게 하는 서울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1월 22일(금)
이사야의 삼중 이상
(사 6:1-8)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는 이상(vision)과 이상을 이끌어가는 열정(passion)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선지자 이사야가 비전을 보았습니다. 선지자는 자신이 본 비전 때문에 삶이 송두리째 변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스랍 천사가 숯으로 자기의 입술을 지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귀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원하여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1. 위로 향한 비전(Upward vision)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이 온 세상을 덮고 있는 모습입니다.
유다의 웃시야 왕은 52년을 통치한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며 백성들을 잘 다스린 왕이었습니다. 그런 왕이 죽어서 나라가 슬픔에 잠기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해 있을 때, 신령한 선지자의 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통치의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3절의 거룩은 이사야 선지자의 신학의 주제입니다.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거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4절은 여호와께서 권능 있게 임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문지방 터가 요동하고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 광경을 접한 선지자는 더럽고 추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2. 자기를 향한 비전(Inward vision)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는 자기 자신을 향한 비전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더러운 것은 없는가, 감추어 둔 우상은 없는가, 내 마음 속의 왕좌에 앉아서 일을 그르치는 은밀한 동기나 누룩덩이는 없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감당하지 못하고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이사야에게 자비와 용서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7절). 이 장면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나를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3. 밖으로 향한 비전(Outward vision)
선지자 이사야는 사죄의 확신을 갖게 되면서 내면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변화가 일어나야 비로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립니다. 이사야는 일꾼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8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메신저를 찾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나가서 경고의 말씀을 전할 헌신된 주의 종을 찾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에 즉시 응답했습니다. 이사야는 자신 앞에 어떤 고난이 닥칠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맛보고, 내면을 향하여 깊은 비전을 가진 자라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게 됩니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것은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응답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충성스럽게 전하다가 혹독한 왕 므낫세에게 잡혀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지자의 높고, 깊고, 넓은 삼중 이상입니다. 이와 같이 위로 향한, 안으로 향한, 밖으로 향한 이상을 가지시므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