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토) 오후 5시 33분, 91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故 이재만 집사님은 이난희 권사의 아버지이자 저의 장인어른이기에 앞서 인생의 스승 같은 분이셨습니다. 한없이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셨던 장인어른은 소박한 생활과 신실한 크리스천의 삶을 사신 정직한 분이셨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동경한 그는 학창 시절 뜻한 바가 있어 의학 대신 물리학도의 길을 택하셨고, 대학에서 후학 양성과 학문 탐구에 평생을 바치신 물리학자였습니다. 올곧게 사신 인생에서 편한 길을 가기보다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신 개척자이셨으며 자연을 사랑한 휴머니스트이셨습니다.
전북 김제의 유교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 하나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평양에서부터 3대째 이어져 내려오며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한 장모님(김은홍 권사)을 만나 65년간 사시면서, 1남 1녀를 자녀로 두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큰 축복 속에서 겸손과 온유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장미에도 가시가 있듯 아픔도 겪으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보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서울교회 본당 왼쪽 맨 뒷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하던 처남(안수집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소아과 의사였던 그가 치료를 위해 서울에 오면 꼭 예배를 드리러 오던 곳이 서울교회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2015년 8월 14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늘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장인어른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 대해 한 번도 내색을 안 하셨습니다. 깊은 신앙심과 한학에도 밝은 학자로서의 넓은 마음, 그리고 항상 평정심을 잃지 않은 품위를 갖고 계셨기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지난해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애틋하게 부르시며 “보고 싶다”라고 흐느껴 우시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감정의 둑이 그만 터지고 만 것 같았습니다. 장인어른의 그러한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지며 가슴 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감동은 생각이 하나가 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이 됨으로써 생겨나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난해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후로 서울교회 예배를 늘 그리워하셨으며 교회가 속히 정상화되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시간표는 정확했습니다. 노환으로 인하여 운명의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미리 가족들과의 이별의 시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사랑을 유산으로 남기시고 평화로운 모습을 한 채 영생의 길로 떠나시기 전 며칠 동안 기도하며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점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3월 8일 입관예배와 3월 9일 발인예배를 인도해 주신 서명철 목사님과 예배에 참석해 주신 서울교회 성도님들과 운구를 담당해 주신 집사님들의 위로에 깊이 감사드리며, 전주 근교에 있는 선영에 무사히 안장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큰 은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용성 집사 (11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