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의 이웃인가?
Who is my neighbor?
눅10:25-37
율법사가 묻는 영생에 대해 예수님은 율법을 기록한 성경으로 대답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마음, 목숨, 힘,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
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 했다.
`옳다. 이를 행하면 살리라`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이 강도 만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되었
다.
I. 3종류의 사람이 그 곳을 지나갔다
제사장과 레위인 즉,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 주고 짐승
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주막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며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을 테니 돌보
아주라 했다.
II.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1. 누가 강도 만난 조국의 이웃인가?
누가 나의 참 이웃이 되어 나를 구원할 것인가?
이 말씀은 불쌍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 아니고 강도 만난 자의 이
웃이 누구냐가 초점이다.
2. 강도 만난 이는 유대인, 그의 이웃은 사마리아인이었다
강한 민족의식, 계급 의식의 담벽을 쌓고 산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죽게 된 마당에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을 개의치 않고 그 사랑을 받았다
.
3. 사랑할 마음은 간절한데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 노처녀, 노총각들이 있다
자신의 고상한 인격과 사랑을 받아들일 만한 자격자가 없다는 것이다.
(고독, 소외)
예수님은 저들이 잊고 있는, 모르고 있는 이웃을 찾아주시려 한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을 이웃으로 맞이하게 되면 율법사가 물은 구원과 영생이 있다
는 것이다.
4.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을 받아들일 줄 몰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잘나고 까다로운지 그 우월감 때문에 이웃이 없다.
고독하다.
5. 예수님은 병고치시고, 불쌍한 이들 돌보시고 기적과 말씀을 놀랍게 보여주
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때 예수님은 내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강도 만난 너희를 도우러 왔는데 지저분한 이유를 붙여 거절할 것이 무엇이냐
하신다.
강도에게 거의 죽어봐야 주님을 받을 것인가?
(일제압박, 공산치하)
6. 예수님을 이웃으로 맞이하여 사랑할 때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나라의 참 이웃이시다.
그분은 이웃을 자기같이 사랑하신다.
자기를 내어주고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III.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그는 자비를 베푼자니이다`(37절)라 했다.
1. 율법의 테두리에 얽매인 사랑이 아니었다
율법에 강도 만난 이를 도와주라 했으면 제사장도 레위인도 도왔을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왜 이 모양이 되었느냐?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느냐? 따져서는 이웃을 만날 수
도 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
아무 이유를 묻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신 아가페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부어야 한다.
2. 사마리아인은 국적, 종교, 연고지, 계급을 초월한 편견 없는 사랑을 부었
다
B.C.750년 앗수르 침략으로 혼혈족이 되어버린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을 도왔다
.
탈북자, 정박아, 육신장애우, 미혼모, 이혼자, 빈민층, 재소자, 버림받은 노
인 등
강도 만나 거의 죽게된, 피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들에게 왜 이렇게 되
었는가 따질 때가 아니다.
이유 없이 사랑하신 이가 예수님이다.
3. 개인적 불편과 고통이 그의 선한 일을 막지 못하였다
`불쌍히 여겨`(33절)
` `(마음이 뜨겁게 움직이는, 애타는 마음)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사람의 아픔이 내게 전달 되어온 심정이다.
compassion : Lt. com(함께) + passio (고난을 받는다)
(교통, 교제, fellowship, participation)
자기에게 닥칠 위험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손실과 불편이 그의 사랑의 마음과 행동을 막지 못했다.
4. 오늘도 불한당(不汗黨) 만나 울고 있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갔으나 예수님은 저들의 이웃이 되어 주셨다.
`너도 가서 그 같이 하라`(37절)
예수님처럼 우리도 강도 만난 이들의 참 이웃이 되어야 한다.
맺는 말
1. 자비는 선택과목이 아니다 (Mercy is not optional)
버려진 창녀, 미혼모, 이혼자, 장애인, 탈북자, homeless(노숙자), 극빈자,
소외된자, 병든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의 본질이
다.(약2:15-16, 요1서3:17,18)
2. 자비는 크리스챤됨을 검증하는 잣대 중 하나다 (Mercy is a test)
참 사랑은 말로만 아니고 행동으로 표현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2:17)
3. 자비는 새로운 사상이 아니다 (Mercy is not new)
인간타락이후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동물의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다.
(그리스도 사역으로 우리 죄를 덮어 주신 것)
이것이 첫 번째 하나님의 자비사역이다.
모세 이전 욥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로 알았다.(욥24:1-21)
모세, 아모스, 이사야 등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크게 강조했다.
4. 예수님은 불쌍한 사람에게 복음을 주셨다 (The Gospel to the poor)
예수님의 첫번 설교 본문은 사61장이었다.
가난한 자에게, 장애인과 병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마11:1-6)
5.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델이다. 예수님을 바라보자
가)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께 복종케 하시는 참 아담이다(롬5:14-21)
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참 대제사장(히4:14-16)
다) 불쌍한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신(고후8:9) 큰 집사(머슴)
비싼 봉사에 자신을 부으신 종이다(막10:45)
라)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눅10:37) 하신 주님처럼 겸손히 다른 이의 발을
닦는 그리스도와 이웃의 머슴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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