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최대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성자다.
예수님은 노도와 풍랑이 이는 갈릴리의 위기 상황에서도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태연히 주무셨다. 자연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에게 닥쳐온 최대의 위기는 오히려 그에겐 최대의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최대의 능력 앞에 있으면서도 최대의 불신으로 떨고 있었다.
주님의 능력보다는 풍랑의 위력 앞에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님보다 세상이 더 크게 보이는 한 인간은 풍랑 앞에서 떨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대의 난국에는 최대의 신앙이 요구된다. 캄캄한 밤일수록 등불이 필요하고 험준한 고개일수록 지팡이가 요구되듯 큰 위기를 맞이한 자마다 큰 믿음이 있어야 한다. 풍랑이 문제가 아니라 불신앙이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마치 말기암에 걸린 중증환자로 진단한다. 신학적으로 미숙하고 잘못된 성장주의로 인해 꿩잡는 놈이 매라는 등식으로 양적, 물량주의로 빠져 버렸다.
영적전쟁이라는 미명하에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 살아남는다는 적자 생존주의와 점쟁이식 예언을 신봉하고 복음의 본질은 훼손되었다. 구도자 예배(Seeker’s Worship)라는 미명하에 열린예배가 미국의 사이비들로부터 직수입되어 경건한 예배 대신 인간을 즐겁게 하는 놀이문화로 변질되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찢어 자파세력 확장에만 급급함으로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분열의 원죄가 있다.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를 방불케하는 교권주의, 공명주의(功名主義), 분파주의, 강단 세속화, 교회 기업화, 윤리적 타락상과 이단 사이비 침투로 얼마 안 있으면 죽는다는 경고장인 말기암 선고를 받아 놓은 상태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을 한국교회는 아는지 모르는지 안일주의에 빠져 기득권 누리기에 집착하고만 있다. 사대교회가 받았던 주님의 경고의 음성이 들려온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문제를 문제로 인식할 수 없는 사람은 위기 위식을 가질 수 없다. 살이 썩고 손톱이 곪아도 아픈 것을 느낄 수 없다면 그는 이미 소망이 끊어진 자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실을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 얼마나 있을까? 이 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군사 문화적 위기도 위기려니와 오늘의 위기는 신앙의 위기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과 관계 정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한국교회의 우선권이 어디에 있음을 보여주신 말씀이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수적 부흥이나 민주화가 안되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하나님을 참으로 만나지 못한데 있음을 겸손히 시인하고 거기서부터 새로 출발을 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어찌할꼬. 자복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길만이 이 위기를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서울장신대석좌교수ㆍ서울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