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은 서구 문명세계의 중심부였다. 그러나 5세기 초 로마는 야만인들에게 황폐해졌고 약탈당함으로 무너졌다. 로마가 몰락한 것은 외부의 강한 군대에 의해 쓰러졌다기보다 내부의 도덕적 부패와 심리적 동요로 패망했다는 역사가들의 증언은 설득력이 있다.
야만인이라는 용어는 당시 헬라어를 모르는 이들이 말하는 소리를 바바…바바처럼 듣고 바바리안(barbarian) 야만인이라 부른데서 시작되었다. 지식도 교양도 없는 이들에게 대명사처럼 쓰여진 이 말은 실은 남을 배려하거나 존중하기보다 자기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이기주의자를 말한 것이다. 아무도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중심주의 세상으로 점차 변하고 있어 야만인의 세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로마는 아직도 건재하다. IMF 충격으로 비틀거렸고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이 나라 문짝이 세차게 걷어차였지만 아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로마도 외적인 충격보다 내면적 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 어쩌면 이 병으로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신야만인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그들은 게걸스럽게 소요하는 주정뱅이나 백주에 강탈하는 고트족이나 반달족이 아니다. 도시의 벽을 긁적거리고 담벽을 허무는 흉노족도 아니다. 신야만인들은 가정에서 빵을 먹이고 교실에서 교육받는 우리의 자녀들이고, 의정 단상에서 법정에서 영화관과 관공서에서 회사와 상점에서 심지어 교회 내에서 둥지를 틀고 활보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매력적이고 환상적이며 설득력을 갖고 우리의 제도를 위협하고 사람으로 사는 것을 흔들어 놓고 있다. 이 신종 야만인들이 이 시대와 다가오는 세대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자기 중심문화, 자기 성취를 최상의 목표로 삼고 있는 개인이기주의, 자기만을 섬기는 야만인들이 우리 가정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현대사회를 진단하는 이들 중에 가정의 부패를 지적하는 이가 적지 않다. 누가 우리의 자녀들을 이 같은 야만인으로 만들었나. 혼외정사, 배우자 바꾸기, 동성연애, 이혼율의 급증등으로 편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미혼모 증가와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일찍부터 생존권 투쟁의 현실에 부딪혀 자기 방어를 하다 보니 모든 사람이 경쟁상대가 되었고 가정의 권위나 사회질서를 존중히 여기지 않는 사회 병리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야만인들이 학교 교실에서도 자라고 있다. 실용주의, 성공주의, 이기주의의 물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교실에서도 남을 누르고 이겨야 산다는 적자생존주의 교육의 영향으로 독특한 야만인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 이 사회의 지도자들조차 야만인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탐욕을 채우려는 포퓰리즘을 이용하여 국민을 속이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성한 교회까지도 야만인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도덕성 특히 성직자나 지도층의 존경과 신뢰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지금, 종교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가고 싶은 교회가 보이질 않아 주저하고 있다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명목상 신자 수가 늘어가고 신앙과 행위는 별개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있다.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라고 한 사도 바울처럼 자기만 아는 야만인이 아닌 한 알의 밀알처럼 죽으면 산다는 진리를 실천하는 참 성도 된 인격자가 되고 싶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서울장신대석좌교수ㆍ서울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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