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새 하늘의 정기가 온 우주에 가득 찬 추석은 우리 민족에게는 일년 중 가장 즐거운 명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즐거운 추석을 맞아 무덤을 찾아 산으로 간다. 그것은 실로 이상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은 흙으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죽음 즉 하나님의 부르심은 누구도 거부하거나 연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인류의 역사와 경험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철인들은 종교신앙이 아니더라도 영혼 불멸설 또는 내세론을 주장하면서 이 세상 너머의 세계를 생각하고 죽음을 미화하고 죽음이후의 세계를 준비해 왔다. 12세기 중국의 주희가 만든 성리학에서 죽은 조상의 영이 이 세상의 화복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황제나 제후들의 위대함을 칭송하여 후손들이 복을 받기를 원하는 조상 숭배를 하는 제사제도를 만듦으로 우리나라의 평민들까지도 자기들 조상의 위대함을 자랑키 위해 너도나도 조상숭배를 하나의 민족고유의 종교처럼 받아들여 실천해 왔다.
조상숭배는 성경적으로 보면 우상숭배요,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유교 철학에서 온 외래 문화의 유산이며, 철학적으로는 과거지향적인 순환적 시간관에 기인된 것이므로 자연주의적 세계관과 효와 충을 동일시 함으로써 평민을 다스리기 위한 조선 왕조의 정치적 산물이다. 따라서 조상에게 제사를 드려야 복을 받는다거나 그것이 효도의 길이라는 생각을 갖고 무덤을 찾기보다는 잔치집에 가기보다 초상집 가기를 즐겨하라는 성경 말씀대로 무덤 앞에서 인생의 무상함과 하나님 앞에서 산 삶만이 영원의 의미가 있음을 아는 지혜를 얻는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21세기 도시에 거주하는 현대인들은 평균 3년 내지 5년에 한번 이사를 하는 이동성을 특성으로 갖고 있다. 죽은 지 오래된 귀신들이 자주 바뀐 서양식 이름을 가진 아파트 집주소를 찾기도 어렵거니와 어렵게 찾아와 보니 본래 한자로 쓰도록 된 제문을 현대에 사는 젊은이들이 한문을 모르니 한글로 써 붙여놓고, 높은 제사상 들고 이사 다니기 불편하여 사람 키만큼 높은 제상이 아닌 밥상 위에 차려놓은 제물을 보고 오기가 난 귀신이 받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까지 돌고 있지 않은가.
부모님 살아계실 때엔 1년에 한번 찾아 뵙지도 못하다가 돌아가신 부모 제사하겠다고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달려가는 것은 효심때문이 아니라 부모님 잘 달래서 복 받으려는 기복사상의 뜻이 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가 아닌가! 그러나 죽은 사람은 그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가 영생과 영벌로 나뉘는 심판을 받을 뿐 이 세상 사람에게 화복을 줄 수 있는 예배의 대상이 되는 위치에 있지 않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성경은 죽은 부모를 공경하라 하지 않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참된 효를 가르치고 있다. 부모의 신앙을 계대하고 살아계신 부모 위한 기도는 물론 사랑과 공경을 물심으로 표현하는 자녀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효의 실천이다.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면 그 분의 평생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나 자신이 자녀들 앞에서 좋은 부모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무덤을 넘어 영원한 세상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를 결단하는 지혜자가 되도록 이 추석에 기도하자.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서울장신대석좌교수ㆍ서울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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