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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1
<순례자39> KOINONIA : 그리스도인의 교제

성경에서 성도의 교제를 코이노니아라는 헬라어로 읽는다. 고전 헬라어에서 코이노니아는 공동체 연합(association) 또는 참여(공동경영, partnership)을 뜻한다. 플라톤은 남녀공학을 위해 남자가 여자와 코이노니아를 한다고 했다. 공동체 개념을 표현하기도 한다. 후기 헬라어에서는 코이노니아를 기쁨과 고통같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서로 합쳐지는 것을 말하였다. 이처럼 코이노니아는 너그럽게 나누는 정신으로 쓰였다. 현대 헬라어에서는 세 가지 의미를 주로 내포한다. ① 사업상 동업자를 말한다. ② 결혼관계에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즉 인생의 코이노니아를 갖기 위해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 ③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할 때 쓰인다.

신약성경에서 코이노니아라는 단어가 18회 나온다. 이 단어가 쓰인 문맥을 연구해 봄으로 코이노니아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얼마나 넓고 깊은 의미로 설명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우정을 나누는 뜻으로 코이노니아가 쓰였다. 타인의 동반자로 사는 것이다.(행2:42, 고후6:14) 그리스도인 지식의 기반이 우정이라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다.(요일서1:3)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는 사람만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

② 불행에 빠져 있는 사람과 실제적으로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을 코이노니아라 한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자기 교회들로부터 연보를 모을 때 코이노니아를 세 차례 사용했다.(롬15:26, 고후8:4, 9:13) 성도의 교제는 아주 실제적이어야 한다.

③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코이노니아라 한다.(빌1:5)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 사역에 참여한 것을 감사하고 있다.

④ 믿음 안에서 코이노니아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믿음 공동체의 일원이다.(엡3:9)

⑤ 그리스도인 삶에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다.(고후13:13, 빌2:1)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임재와 동행하심과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산다.

⑥ 그리스도와의 코이노니아 즉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코이노니아에 부름을 받은 자다.(고전1:9) 이 교제는 특히 성찬식을 통해 볼 수 있다.(고전10:16) 잔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떡은 그리스도의 몸과 코이노니아를 이룬다. 성례식에서 성도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서로가 연합하는 코이노니아를 이룬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빌3:10) 반면에 성도가 고통을 당할 때 그리스도가 아파하시고 고통 중에 계신다. 내 고통을 그리스도께서 함께 나누는 것을 아는 기쁨이 성도에게는 있다.

⑦ 아버지 하나님과 코이노니아도 있다.(요1서1:3) 하나님과 교제하는 이는 어둠에서 행하지 않는 윤리적 제한이 있다.(요1서1:6)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는 성도끼리 서로 묶고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대한 책임이 있다.

고전 헬라어에서 Koinonein(코이노네인)이라는 단어 즉 어떤 것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형이 있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과 나누어 갖는 것을 뜻한다. 비지네스나 의견을 나누거나 동의할 때 쓴다. 현대 헬라어에서는 다른 사람과 행동을 나눈다. 또는 공동 소유를 나눌 때 쓰인다. 그리고 생명을 나눌 때 사용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모든 인간이 인간 본성을 나눈 자(히2:14)라고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물질을 서로 나눈다(롬12:13, 15:27, 갈6:6)고 가르친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동역자이기 때문에 행동을 나누고 경험을 나누어야 한다.(벧전4:13)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하는 것이다.

고전 헬라어 Koinonos(코이노노스)는 분담자, 동업자라는 명사다. 신약성경에 10회 나온다. 행동에 참여하는 것 즉 조상의 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궤변을 한 바리새인의 말을 예수님이 지적하실 때 쓰셨다.(마23:30) 또한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어부로서 동업자 즉 코이노노스였다. 바울은 디도를 나의 동료, 동역자라 했다.(고후8:23) 바울은 빌레몬에게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빌레몬1:17) 하면서 오네시모를 위해 변호했다. 이것은 경험도 나눈다.(고전1:7, 히10:33)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도 코이노노스다.(벧후1:4) 이보다 더 아름답고 은혜로운 말이 성도의 삶 속에 있을까?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서울장신대석좌교수ㆍ서울교회 원로>

한국장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