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니이까.”(시22:1,2) 이 말씀은 루터의 생애를 뒤집어 놓은 살아 역사하신 말씀이다. 복음이 무엇이며, 은혜가 무엇인지 루터에게 파헤쳐 보여 주시고 깨닫게 하신 말씀이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얼굴을 보여주신 말씀이었고, 지금까지 무서운 심판주로만 보였던 하나님의 얼굴이 용서와 사랑의 얼굴임을 보여주신 말씀이다. 루터의 가슴에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복음으로 불붙게 했고, 그의 전생애를 복음 위해 불살라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생애를 불태웠던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예언한 가장 중요한 예언이시다. 인간의 질병의 고통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형집행을 묘사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을 옮긴 것이다. 십자가 형틀은 이 시를 기록한 다윗시대엔 없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당시 사람의 경험이 아니고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으시는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예언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수난의 이유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른 바 까닭없는 고난이라 해서 주님의 은고를 밤낮 탄원해 보았지만, 하나님은 자비를 철회하신 듯 일체 응답이 없으시다.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가 거절당하는 고통 이상의 처절한 고통은 없다. 그러기에 본 시는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비탄으로 시작된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시인의 불평이라기보다 시인의 심중에 일고 있는 신앙과 실망의 교전임을 ? 이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과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짐을 대신 지시는 심한 고통을 견디면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신 끝까지 아버지 뜻을 이루시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어둠의 시간들을 통해 인류 구원을 완성하신 고난의 종이셨다.
예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 대한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와 타인의 생명만을 생각하셨다. 그래서 이같은 생각은 그날 정오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이 온통 어둠으로 뒤덮혔다.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예수가 ‘우리 죄를 지시고 있는 동안’ 그를 보지 않기 위한 방패로 어둠을 내리셨다. 이 세 시간 동안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때 갑자기 예수께서 소리치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셨다.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군인들이 해면을 우슬초에 매며 예수의 입에 대어 주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다른 이들의 생명을 생각하시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는 자신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며”라고 십자가로 오늘도 말을 한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고난의 종으로 죽으심으로 실패하신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승리의 부활로 영광과 찬양 받으시는 속죄 사역을 완성하시므로 수많은 죄인들을 구원함에 이르게 하셨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한 이후, 이 세상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의식할 경우 당신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너희 죄는 내 안에서 사함 받았고 너희 고통은 지나가 버렸다”는 그리스도의 자비하신 복음을 듣게 될 것이다. 시인이 기도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믿으며(3), 과거에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것을 알며(4-5), 시인이 받는 수욕은 곧 하나님의 수욕이며(6-8), 시인은 모태로부터 주의 것으로 봉헌된 자임을 믿으며(9-10), 시인은 주님 외에는 자기를 도울 자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주께서 반드시 자기를 구원하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11-21) 과히 위대한 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백성의 조롱감이 된 고난의 종 그리스도는 “너를 네 하나님이 구원치 않으시냐”면서 침을 뱉고 멸시했다. 벌레 취급당하면서 다시 기도하신 고난의 종을 바라보자. 신앙이란 의지할 뿐 아니라 맡기는 ‘헌신하는 것’이다. 헌신 없는 신앙은 확실한 신앙이라 할 수 없다.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는 육체적 고통과 마음은 밀랍같이 녹아내렸다. 마침내 고난의 종은 아버지 하나님과 대화를 회복한다.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이 알려지게 되었다. 예수님은 당신을 버림받지 않게 하시려고 자신을 버리셨다. 당신이 죄로 고통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의 죄를 대신 지셨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을 네가 믿느냐?”고 고난의 종된 메시아는 오늘도 우리에게 믿음을 확인하시고 싶어 하신다.

이종윤 목사
<한국기독교학술원장ㆍ몽골울란바타르대 명예총장ㆍ서울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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