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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6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출발

 한국 장로교회의 첫 교회는 1887년 9월에 설립된 새문안교회이다. 새문안교회는 한국 최초의 장로회 조직교회로서 역사적 위상을 가지지만 새문안교회의 설립을 곧 한국장로교회의 출발로 볼 것인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한 국가의 장로교회는 그저 장로교의 신학을 따르는 교회들이 설립되는 것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장로교회의 성립은 교회->노회->대회->총회로 이어지는 정치체계의 구축으로 완료하기 때문이다. 이중 노회는 행정단위 지역에 따라 구성되는데 소속 교회들의 목회와 사무를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노회는 목사와 장로의 안수를 담당하기 때문에 목사와 장로가 없이는 당회를 조직할 수 없는 장로교회의 제도상 필수적인 조직이라 하겠다.
 선교사들은 한국 장로교회가 정말 한국인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장로교회 정치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미국 북장로회와 남장로회의 선교사들은 1893년 ‘장로회 정치를 쓰는 미션공회’(the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를 조직하고 한국에 단일한 장로교회(개혁교회 신경과 장로회 정치를 사용하는 연합교회)를 세울 것을 결의했다. 선교사들은 이 공회가 정식 노회를 조직하기 위한 준비기관이라 생각했다.
 공회는 1900년 장로선거를 하여 한국인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합법성을 가질 수 있도록 조치했고 1901년부터 한국인 장로들과 조사들이 공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01년 한국에 선교 중인 4개의 선교부(미국 북장로회, 남장로회, 캐나다장로회, 호주장로회)의 연합으로 “선교사와 조선인 총대 합성공의회”, 다른 말로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가 조직되었다. 공의회는 ‘조선자유장로회’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장로회’란 선교사를 파송한 서양의 교회로부터 한국 장로교회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공의회는 1907년에 한국장로교회를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노회 설립을 준비해 나갔다. 그리고 독립적인 노회가 성립하려면 한국인 목사가 있어야 했기에 1901년부터 한국인의 신학수업을 시작하는 한편 신학교 설립도 준비하여 1903년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일명 평양신학교)를 개교하였다.
 한편 1902년 한국장로교 신조와 규칙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하나의 교회를 설립하려면 그전에 4개의 선교부 모두가 동의하는 정신적?정치적 틀이 준비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신조의 채택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공의회는 1905년 인도장로교회가 1904년에 채택한 12신조를 서문만 수정하여 채택했다. 이는 선교사들이 한국의 장로교회를 세우면서 동시에 아시아 지역 장로교회 사이의 연대를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들은 이 신조가 인도와 한국뿐만이 아닌 아시아의 장로교회를 위한 신앙고백이 되어 아시아 교회들 사이의 유대의 기반이 되기를 바랐다.
 한편 정치적 규범을 만드는 일은 좀 더 복잡했다. 공의회는 1906년이 되어서야 정치규칙으로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을 채택할 것을 고려했다. 하지만 너무 복잡하고 무거워 신생 교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여론이 많았다. 결국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 대신 “만국장로교회의 보통원리”에 근거한 “간단한 정치”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역시 인도장로교회의 정치규칙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약간 수정한 것이었다.
1893년부터 13년간 준비해온 ‘조선자유장로회’의 출범은 1907년 9월 1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 설립으로 완료되었다. 이날 평양 장대현교회에 모인 한국인 장로 40명과 선교사 목사 38명은 ‘대한장로교회 신경’과 ‘대한예수교장로회 규칙’을 채택하고 한국인 목사 7명(서경조, 한석진, 양전백, 방기창, 길선주, 이기풍, 송인서)을 장립하여 한국장로교회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독노회 창설 기념으로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한국장로교회는 그 출발부터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의 설립으로 비로소 한국에 장로교회 전통의 신조와 정치규칙을 가진 독립적 장로교회가 생겨났다. 게일(James S. Gale) 선교사는 “오늘은 대한장로교회가 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서울교회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는 바로 이날을 교단 생일로 여긴다.
 길선주 목사는 회의 기간 중 “대한국예수교장로회 노회 회록 서문”을 써서 낭독하였고 회중들은 이를 채택했다. 당시 한국 장로교인들이 얼마나 큰 감격을 느꼈는지 알 수 있다.


“신령하고 크도다. 이 아름다운 노회여!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찍이 사도와 문도를 택정하여 세우사 천국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도다. …
주후 1907년 9월 17일 정오에 한국 노회를 설립한 후에 대한에 신학교 졸업학사 일곱사람을 목사로 장립하고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라 하셨으니 이는 실로 대한국 독립 노회로다. 할렐루야 찬송으로 성부 성자 성신님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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