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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3
창조주를 기억하십시오



 예수님 시대의 대제사장 가야바는 자기 가문이 장악했던 종교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방법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주도했습니다. 불법 재판을 강행하고 거짓 증인들을 매수하여 빌라도 법정에 세우고 군중들을 선동해서 예수님에 대한 십자가 처형을 소리 높여 구하게 했습니 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성공했고 그의 권력은 영구히 확보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조작할 만큼 막강한 위력을 행사했던 그의 가문 역시 3대를 이어가지 못한 채 유골함의 분토로만 역사에 부끄럽게 남았을 뿐입니다. 헛된 삶이었습니다.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 1:11)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영원히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 세상이 칭찬과 박수로 언제나 나를 맞이해 주기를 희망하지만 역사는 냉정하고 인심은 무심한 것이어서 우리의 육신이 분토처럼 사라지듯 우리에 대한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전 세대를 기억하지 못하듯 다음 세대들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허무 하게만 보이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 현실을 직시하라
 전도서의 기자는 솔로몬 왕입니다. 그는 최고의 삶을 구가했던 왕으로 가장 화려한 인생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막대한 정치적 유산과 국가적 자산을 물려받았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화려하고 위대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허무한 생각만이 그의 뼛속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세상을 정의롭고 공평하게 바꾸고 싶 어 했던 그의 희망도 좌절되었고,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었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었다며 정치의 한계를 실토했습니다. 그는 최고의 삶을 살았지만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였고 세상을 고치지도 못한 자기 삶을 돌아보며 헛되고 헛되다고 했습니다. 왕상 11:3에는 솔로몬의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고 했는데 돌아보니 이것 또한 미친 짓이었다고 처참한 마음으로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의 허무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세상의 부조리한 현실이었습니다. 가장 정의로워야 할 그곳에 불공정과 사욕과 뇌물이 횡행하는 것을 보고 탄식합니다. 그러면서 한가지 희망을 가진 것은 이런 불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악인이 더 번성하고 의인이나 악인의 종말이 다 같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에 대해서도 낙심하게 됩니다. 오히려 악인들은 선한 사람들의 선행 때문에 득을 보고 살지만 의인은 악인들의 악함 때문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손실을 당하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살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세상의 어떤 것에도 만족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악은 무성 하고 우리의 노력이 아무리 처절해도 세상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지만 그래도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에 도전해야 합니다.

 2. 도피하지 말라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9절) 이 말씀은 매우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며 정의롭고 담대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현실의 부조리가 가득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굽은 것을 바르게 펴지 못하는 미약함이 우리에게 있어도 신앙과 정의의 길을 따라 도전하는 긍정과 희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910년에 한일강제합방이 이루어지고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우리나라도 휩쓸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 1,760만 중에 약 290만 명이 감염되었고 그 중에 14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끔찍한 재앙이었습니다. 그 후 1919년 3.1 독립운동도 실패로 끝나고 조선의 독립은 요원해졌습니다. 이때 깊은 좌절감이 우리 민족 전체를 뒤덮게 됩니다. 술, 도박, 담배 등으로 젊은 영혼들이 병들고, 미래를 꿈꾸어야 할 젊은이들은 허무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교회로 모였던 많은 지식인들은 친일파로 변절하거나 사회주의 운동가로 전향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한국 장로교회가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사회개조운동을 전개하면서 전국적으로 금주 금연운동을 시행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금주 금연운동 전통은 민족의 절망기와 허무주의가 팽배해 가던 시대에 이를 극복하려는 우리 선배들의 불굴의 신앙정신이 만든 정책 이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피하지 말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면서 양심과 영혼의 명령을 따라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서가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3. 창조주를 기억하라
 이 모순되고 힘겨운 세상살이의 또 하나의 원리를 전도서에서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는 말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허무를 극복하는 비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우리 시대에 개막되면서 인류사회는 새로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 런 문명에 생각 없이 자기를 맡기면 인간은 기계의 부품처럼 전락하고 존재 의미가 퇴색하며 행복과 보람에서 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온 세계가 공허했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자 온 세계가 충만한 생명의 세계로 바뀌었 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의 세계로 돌변했습니다. 창 조주 하나님이 계신 곳에 허무와 공허가 사라지고 충만한 세계가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무하다고 느껴지는 세상에 살면서 허무에 침식 당하지 말고 우리 삶을 충만한 생명으로 가득하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임재 하시는 곳에 모든 공허와 어두움이 사라지고 빛과 생명이 넘쳐날 것입니다. Augustinus는 ‘모든 것은 불확실하 다. 단지 죽음만 확실하다 (omnia incerta, sola mors certa)’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뜻을 행하며 인생의 도리를 다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 상에 보내신 뜻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허무를 이기고 충만한 삶을 사는 길이며 인생의 정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뜻을 따라 살면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 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이것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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