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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0
일어나라!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으니 이제 는 일어나서 같이 가자”는 아가서 2장의 말씀은 오늘 우리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모진 세월이 지나가고 험한 일도 다 그쳤으니 이제는 우리가 꿈 꾸는 아름답고 복된 교회를 향해 다시 출발하라는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 26:46)는 말씀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저 하지도 말고 갈등하지 말고 십자가를 향해 출발하자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라 함께 가자’는 삶의 절정의 헌신을 향해 함께 가자는 주님의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영적 거인들에게도 늘 절정으로 헌신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모세에게도 아브라함에게도 세리 마태에게도 사도 바울에게도 절정의 삶을 향한 출발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청년이었던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셨고 그 자신도 자기를 표현 할 때 ‘주의 사랑하시는 자’라고 자주 말했습니다(요 13:23, 21:7, 20). 주님께서도 그를 특별히 아끼셨고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는 그 모친 마리아를 모실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 후 사도 요한은 성경 무대에서 잠시 사라졌다가 한참 후에 전도의 일선으로 다시 복귀하게 되는데 사도 요한으로서는 그때가 절정의 헌신을 향한 새 출발의 시기였습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사도 요한은 그가 사랑했던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간곡한 말로 신앙의 최고점에 관해 교훈하면서 그 핵심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 에베소교회에 주는 교훈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랑을 호소하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하는 애절한 사도의 음성은 에베소교회에 이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때 에베소교회에 거짓 선지자 곧 이단들이 나타났습니다. 당시에는 교회를 괴롭힌 두 종류의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유대교적 이단으로 율법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강조하는 율법주의 자들이고 또 하나는 헬라적 이단으로 영지주의였습니다. 그들은 헬라철 학의 이원론에 근거해서 예수님께서 육체로 세상에 오신 것을 부정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괴롭힌 이단은 바로 영지주의였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이런 이단들을 대처하고 배척하기 위해 투쟁했고 마침내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계 2:2)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냉정하고 엄격하게 이단을 구분하고 배척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분위기가 살벌해지고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고 하시면서 사랑을 반드시 회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런 에베소교회의 사정을 염두에 두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이제는 서로 사랑하라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호소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가장 어린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실수도 많았고 긴 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다 겪었습니다. 박해와 환난의 시기에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헌신을 했고, 풍전등화와 같은 교회를 지키 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며 1세기 말 마지막 남은 최후의 사도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이제 교회는 신앙의 최고점, 영적 절정의 경지, 곧 사랑으로 가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모든 헌신과 수고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 어디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보고 사랑을 배우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 니”(요 3:16) 사도 요한은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사랑을 매우 강조합니 다. 하나님 사랑의 극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 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 라”(롬 5:8)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이 하나님 사랑의 증거이며 사랑의 실체요 사랑의 최고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최고의 사랑을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사는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칭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런 농익은 사랑의 사람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도 요한의 별명은 한때 ‘보아너게’, 우레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성격이 과격하고 혈기가 넘치고 폭력 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최고점을 향해 가면서 사랑의 사도로 성숙해 갔습니다. 자기가 기록한 요한복음에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했고 자기 스스로를 단지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로만 기록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그가 성숙한 사랑의 사람으로 자라갔습니다.

 3. 진정한 승리를 위한 출발
 1세기의 교회는 박해와 환난에 대한 눈물겨운 투쟁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거룩한 투쟁의 승리는 세상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의 본질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11-12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 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주님은 분명히 당신이 세상을 이기셨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몇 시간 후 예수님은 붙잡히시고 고초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분명히 이기셨다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참혹한 종말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승리의 의미를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고 더 많은 것을 획득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승리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며 주님처럼 사랑하는 것이며 신앙과 양심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으면 그 죽음이 승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승리를 향해 출발해야 합니다. 초기 기독교는 오직 믿음과 선행의 실천으로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로마제국을 점령했지만 중세의 교회는 수십만 병력의 희생을 치르면서도 인류 역사에 크나큰 오점만 남겼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물리적 힘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능력, 사랑의 감화력이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 4:12)
 비록 우리가 사망의 고통에 넘겨져도 이웃들에게 구원과 생명의 은총이 넘쳐난다면 그 사랑과 헌신의 길을 걷는 것이 승리이며 영광입니다. 이제 그 길을 향해 일어나 함께 갑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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