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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6
이종윤 목사의 신실한 생애를 감사합니다
이종윤 목사 원로ㆍ공로목사 추대 축사

손봉호 목사
(전 동덕여자대학교 총장)


이종윤 목사님이 젊었을 때의 모습이 눈앞에 환하고 지금도 젊어 보이는데 벌써 은퇴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흔히 어떤 직임의 임기를 마칠 때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 “대과 없이”란 것인데 큰 허물없이 임기를 마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종윤 목사님의 은퇴를 축하하는 것은 그 동안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무사히 잘 마치고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처럼 성도들이 모두 아쉬워할 때 떠날 수 있는 것은 큰 복이요 은혜입니다.
이종윤 목사님은 나의 웨스트민스터 후배이지만 처음 만난 것은 1970년 후반 아세아연합신학원에서 입니다. 그 때 내가 발견한 것은 그가 매우 유능한 행정가란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외모로부터 모든 일에 깔끔하지만 학교 행정도 매우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나는 행정에 경험도 없고 능력도 없어서 명색이 교무처장이었지만 서류를 어떻게 처리하고 정리하는지를 전혀 몰라 사무실이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목사가 그 흩어진 서류들을 척척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을 보고 탄복했습니다.
1979년 나는 연구교수로 1년 간 네덜란드에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1975년에 창립한 서울영동교회의 설교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설교자가 자리를 비우게 되었으니 교인들의 걱정이 매우 컸습니다. 마침 그 때 아직도 교회를 맡지 않고 있던 이종윤 박사께 1년간 서울영동교회 설교를 부탁했고 살던 집도 빌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1년 후에 귀국해 보니 내가 떠날 때보다 교회가 훨씬 더 성장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설교 잘하는 이 목사님을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서울영동교회의 사역과 성장에 이종윤 목사의 공헌이 적지 않습니다.
그 후 이 목사는 할렐루야 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영동교회에서 설교하던 사람이 그 교회와 거리가 가까운 곳에 목회해도 되는지 나와 의논하러 찾아 왔습니다. 요즘 다른 교회 코앞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실제로 거리가 그렇게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목회하는 것을 그렇게 미안해하는 이목사가 매우 존경스러웠습니다.
이 목사는 그 뒤에도 장애인 교육과 선교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고 지금은 장애인을 위한 고등교육 기관을 설립하였습니다. 근 30년 간 장애인 운동을 한 나는 “장애인에 관심을 가진 목사는 무조건 좋은 목사”란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종윤 목사님은 좋은 목사님입니다.
여러 면에서 이종윤 목사는 한국교회와 한국 신학에 소중한 공헌을 했습니다. 많은 열매 거두면서 귀한 사역 잘 마치고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목사님께 축하드립니다.

김상복 목사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


내가 이종윤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6.25 휴전 직후, 고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이종윤은 충현교회의 학생회 임원이었고 나는 서울시청 앞에 있는 흥천교회 학생회 임원이었습니다. 두 교회 학생회는 종종 교류를 하며 때로는 함께 웅변대회나 토론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이종윤은 잘 생긴 얼굴에 다소 근엄하고 반듯하고 정중한 모범생이었습니다. 이종윤의 그 반듯한 모습은 평생 변치 않는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이 목사님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입학하셔서 신학과 목회의 길로 저보다 먼저 들어가셨고, 석사학위를 마친 후 미국으로 유학가 전통적 복음주의 신학교인 웨스트민스터에서 공부하였고, 영국으로 건너가 최종 학위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변함없는 본래의 철저한 신앙과 복음적 신학에 근거하여 이미 대부분 세계 학자들이 받아드리고 있는 복음서의 Q 문서설에 대한 신랄한 학문적 비판을 가하는 보기 드믄 용기를 보여주시며 불확실한 신학적 이론으로 신학계와 교계를 어지럽히는 학자들에게 소신 있는 학문적 답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아신대 교수 시절 이 목사님이 대치동에 할렐루야교회를 개척하여 한참 개발되고 있던 강남지역에 중요한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가 학계와 교계의 두 날개를 펼치며 새로운 영적인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신학자, 목회자, 행정가로서 오랫동안 훈련되고 잘 준비된 이 목사님은 한국교회와 신학계와 대학교를 섬기실 뿐 아니라 아시아 신학계와 교계도 동시에 섬기셨습니다. 아시아복음주의연맹(EFA)과 아시아신학연맹(ATA)의 이사로 폭넓은 사역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많은 공헌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일과 미국의 신학대학원 연구교수로서 꾸준히 자신의 학자적 칼이 녹슬지 않도록, 또 기독교계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자질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은혜의 행진입니다.
학문과 목회와 리더십으로 완성되신 이종윤 목사님, 특별히 많은 은사와 은총을 한 몸에 받아 충성스럽게 헌신해 오신 한 분 이종윤 목사님, 어린 시절 만난 신실한 한 친구에게 내려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한 평생 바라보면서 감회가 깊고 선하신 손길을 이 목사님에게 펴주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와 감사가 저절로 솟아오릅니다.

이응선 장로
(서울교회 원로장로)



전도사 시절부터 제가 지켜본 이목사님의 전 생애는 오로지 복음과 교회를 위하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열열한 기도와 성경적 설교와 일관성있는 프로그램으로 서울교회를 목양 하시며 하나님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루시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섬기시며 향도하신 참 하나님의 선한 목자이시며 우리들의 신앙의 아버지십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인격과 명예를 누명으로 유린당하고, 거룩한 성직마저 박탈했던 분들을 원망도 책망도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권리 회복을 위한 어떤 정당한 권한도 행사치 않으시며 다만 하나님의 섭리만을 고대하고 묵묵히 복음만을 위하여 헌신하시면서 사랑의 손을 먼저 건네시며 용서와 화해로 아가페의 참사랑을 실천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종이십니다.
목사님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사생활까지도 포기하시며 세상이 추구하는 재물을 한번도 소유해보실 생각조차 하지 않으시어 자기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통장 하나도 없는 강직하고 청빈한 종이십니다.
목사님이 1979년 중공땅 지하교회에 베풀던 성례식에서 저들과 했던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휴전선 넘어 저 공산세계에서..."라고 축도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노종의 가슴은 뜨겁게 타오릅니다.
목사님은 제2의 칼빈이십니다. 은퇴하신 후에도 목사님의 예언자적 통찰력과 학자적 식견, 그리고 불타는 정열로 복음사역에 임하셔서 목사님의 탁월하신 영도력으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사도적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로 거듭나게 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목회를 연구하고 계승하는 많은 후학들에게서 제2, 제3의 이종윤 목사님이 나오게 될 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종윤 목사님을 존경하며 사랑합니다.

故 이종윤 원로목사 2주기 추모예배
목사님, 세월이 흐를수록 당신이 그립습니다
고 이종윤 원로목사님 소천 2주기 추모 행사
고 이종윤 원로목사님 소천 2주기 추모 행사
사도의 고별 설교
故 이종윤 원로목사님 당신이 많이 그립습니다
모든 것을 주 그리스도를 위하여모든 위하여
고 이종윤 원로목사 1주기 추모 행사
한줌 흙으로 돌아가신 목사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